[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곽효환 ‘자두’

2023-08-14     전상헌 기자

여름이면 장마가 끝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장마 끝 무렵 물오른 자두나무 가지에 매달린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의 비와 바람과 햇볕
연두와 노란빛이 빨강과 자줏빛으로
익어가는 여름이 마침내
커다란 소쿠리에 가득 담긴 날이면
들보 아래 대청마루가 환하게 밝아졌다
유독 눈물 많은 누이와 두 동생 그리고
나는 소쿠리에서 가장 탐스러운 여름 하나를
손에 쥐고 크게 베어 물었다
입안 가득 고인 침과 과즙이 뒤섞인
새콤 달콤 시큼함에 찌푸린 얼굴
그 여름 오후가 붉게 더 검붉게 익어가면
볼품없고 때깔 흐린 무른 여름 하나
가장 늦게 어머니 입가를 물들였다


기다림 끝에 맛본 붉게 물든 자두와 어머니의 사랑

자두는 붉은 앵두를 부풀린 듯 매끈하고 탱탱하다. 물기가 많고 싱그럽다. 그런 자두가 얼마나 보기 좋고 먹음직스러운지 시인은 ‘탐스러운 여름 하나’라고 표현했다.

새콤달콤한 자두는 궁핍했던 시절, 더위에 지친 입맛을 돌게 하는 훌륭한 요깃거리여서 집안의 자두나무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시인도 유년의 뜰에 있던 커다란 자두나무 아래서 자두가 어서 익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나 보다. ‘연두와 노란빛’에서 ‘빨강과 자줏빛’으로 변해가는 자두의 색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점점 커져가는 시인의 기다림을 잘 보여준다. 마침내 장마가 끝나고 소쿠리에 가득 담긴 자두는 그 붉은 빛으로 ‘대청마루를 환하게 밝’히고, 4남매는 입 주위와 손에 달콤한 과즙을 온통 묻히며 자두를 먹기에 바쁘다.

그런데 예쁘고 탐스러운 자두는 어린 자식들에게 다 내어주고 어머니는 끝물에 이른 ‘볼품없고 때깔 흐린 무른’ 자두를 드신다.

자두는 어머니 입가를 물들이고, 어머니의 사랑은 시인의 유년을 물들이고.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