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재난 안전 관리는 실전(實戰)이다

2023-08-14     경상일보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재난 안전 부서는 공직자들의 기피 보직이다. 그래서 파견 복귀자나 신규 전입자 등이 배치되기 십상이다. 지하차도 침수, 산사태와 유실, 붕괴 등 유사한 사고와 인명 피해가 되풀이되고 있다. 필자는 광역 자치단체 업무를 책임져 본 적은 있으나 전공이 기획과 인사 등일 뿐 안전 분야 전문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일련의 사고에서 어떤 허점 같은 것이 보이는 까닭은 이 분야에 까막눈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민 생명과 재산 보호가 정부 본연의 최우선 임무이고, 세상에 실제 상황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한때 ‘시라소니와 최배달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질문에 편이 갈리긴 했으나 시라소니 편의 논거는 싸움은 체계가 아니라 본능이라는 것이다. 최배달이 주로 체계적인 훈련과 대결을 통해 고수가 된 데 비해 시라소니는 훨씬 살벌한 실전에서 강화된 동물적 본능으로 싸우기 때문에 이긴다는 것이다. 실제 그 시절 일본에서만 28전승을 거둔 무적의 복싱 동양 챔피언 J씨는 싸움꾼 김두한의 주먹 한 방에 바닥을 굴러버렸다.

‘기획’을 논하자면, 그 개념은 ‘목표 달성을 위한 최적 대안을 탐색·추진하는 미래지향적 과정’이다. 그렇지만 이 매력적인 콘셉트가 아무리 잘 숙지되어 있어도 야전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필드에서는 실전(實戰) 기획으로 단련된 어느 선배의 말처럼 오직 ‘철저히 신경 쓰는 것’이다. 태권도에 품새가 있고 약속 겨루기와 자유 대련이 있다. 그러나 실전에서 품새나 겨루기 방식으로 동작을 전개한다면 아마도 싸우던 개들이 웃을 것이다. 요는 불퇴전의 깡이다. 깡이 솟아나지 않으면 숱한 수련도 실전에 소용이 없다.

재난 안전 관리는 실전이다. 경계병의 철칙 ‘졸면 죽는다’. 경계에 연습이 없으며 모든 경계는 실제 상황이다. 재난 안전 상황도 연습은 없다. 안전관리자의 철칙 ‘놓치면 죽는다’. 눈이 떠나면 놓친다. 호우주의보가 예정된 상황에서 회식은 물론 공·사적인 약속도 안 된다. 강변에 바람이 불면 공항의 바람도 생각해야 한다. 태권도 품새 십 년에 겨루기 천 번을 익히면 뭐하나? 안전 매뉴얼과 운영체계를 정비·보강하며 훈련 수십 번을 하면 뭐하나? 시스템 무용론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잘 짜인 체계도 생사의 현장에서 ‘활용(活用)’이 되지 않으면 ‘무용’을 넘어 방해가 될 것이다. 오로지 독기 찬 사명감이 뒷받침될 때 시스템이 살 수 있다.

비상상황은 다양하다. 그 단계가 순차적일 때도 있지만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경우가 더 많다. 물 폭탄이 덮쳐 오는데 매뉴얼 상 절차대로 관계기관 회의 소집 따위를 하고 있다면 정신 나간 짓이다. 또 인과관계도 불명확한데 매뉴얼 절차를 제대로 안 지켰다고 유죄 판결을 하는 재판부도 판단의 번지수가 틀린 것이다. 전투병의 전장(戰場) 재량은 실전의 기본이다.

소관 문제도 그렇다. 공직자는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이 겁나면 철저히 대처하면 된다. 관내 현장 관할부터 따지는 공직자는 당장 떠나야 한다. 안이한 매너리즘도 문제다. 귀신 잡는 해병대는 쏟아지는 흙 물살에 구명조끼도 없이 투입해도 괜찮은가? 노자 가르침이다. ‘천하의 어려운 일도 하찮은 데서 비롯된다(天下難事 必作於易).’ 범 잡으러 가는 자는 총과 칼을 다 준비하는 법이다.

물론 근본문제는 행정체계에도 있다. 지방의 사무나 공중시설이 국가, 광역·기초단체로 관리 영역이 혼재되어 있고, 경찰·소방과의 역할 분담도 복잡하다. 단순화해야 한다. 행정체제 개혁은 작금의 숙제다. 이런 실정에서 현장 소통, 감시·순찰 등 안전관리 체계를 면밀히 하는 것이 기본이긴 하나, 목숨 건 실전에는 ‘감투정신(敢鬪精神)’이 핵심이다. 그리고 실탄도 소중하지만 상황관리 재량과 사기(士氣)도 중요하다. 안전부서 근무자에게 험지(險地) 근무수당이라도 지급해야 한다.

전충렬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 전 울산부시장 행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