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학에서 ‘법학 입문’이나 ‘법과 사회’ 같은 이름으로 개설된 교양과목을 수강하게 되면 법과 다른 사회규범과의 차이를 설명할 때 배우는 문구가 있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은 독일의 헌법학자 게오르그 옐리네크(Georg Jellinek)의 1878년 작 <정의와 불의 그리고 처벌의 사회윤리적 중요성(Die sozialethische Bedeutung von Recht, Unrecht und Strafe)>이라는 책에서 인용된 것이다. 도덕이라는 개념으로 상징되는 다른 사회규범들과 달리, 위반 시 불이익처분을 당하는 등 준수를 강제할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 법이 가진 특징이라는 것도 함께 배우게 된다.
국토지리정보원이 펴낸 대한민국 국가지도집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일반 가구 중 52%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각 세대가 하나의 건축물 안에서 그 건축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유하며 각각 독립된 주거생활을 한다는 주택법상 공동주택에 대한 정의 조항은 오늘 한국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어떠한지를 아울러 정의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사회가 있는 곳에 법이 있다는 법언(法諺)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는 법이 있어야 할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관련 입법은 매우 소극적이다. 층간 소음으로 분쟁이 극단으로 치달아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앙심을 품은 입주민 하나가 공동주차장 입구를 가로막아 전체 입주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반복되어도 법 집행관들이 개입할 방법이 없다. 공동주택 관리규약은 강제성이 없고, 게시판과 엘리베이터마다 빼곡히 붙어 있는 수많은 안내와 주의사항에 후렴구처럼 적혀있는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은 마치 높은 깃대 끝에 매달려 펄럭이는 깃발처럼 조그맣고 조용해 주의를 끌기 어렵다.
공동주택 부지 내 무단히 주차된 차량을 단속하기 위한 강제력이 주차위반 사실을 고지하는 노란색 스티커의 접착력에 달려있다는 현실은 유머러스 하다못해 부조리하다. 미국의 경우 공동주택단지 내 주차장에는 예외 없이 ‘무단 주차 차량은 견인되며 관련 비용은 차주가 부담함’(Violators towed away at vehicle owner’s expense)을 알리는 표지판이 눈에 잘 띄는 곳에 세워져 있고, 그대로 집행된다. 관련 주법(state code)과 조례(local ordinance)에 근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인데, 내가 살았던 버지니아주는 단속 대상 차량을 아예 처음부터 불법침입 차량(trespassing vehicles)이라고 정의한다.
연방제와 지방자치의 전통에 기인하겠지만, 공동체의 생활을 규율하는 미국의 지방정부 조례를 읽다 보면 이런 것까지 규제하고 있구나, 하고 놀라게 된다. 건물의 지붕과 벽 색깔을 무엇으로 할지부터 마당의 잔디는 어느 요일과 시간에 깎아야 하는지가 정해져 있는 식인데, 의회가 직접 법률로 정하기에는 목적과 내용상 바람직하지도 않고 체계상으로도 부적합한 규제의 필요를 조례가 채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준수가 강제되지 않고 위반에 따르는 제재도 없으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정해 놓은 규칙들이 있다. 이를 어겼다고 해서 대중교통 이용을 거부당하거나 공공시설에서 퇴거를 요구받지 않는다. 위반으로 생겨난 불편과 위험이 모두에게 나누어져 부담될 뿐이다. 2020년 3월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확산되던 당시 권고 사항이었던 코로나 확진자의 자가격리의무를 위반한 채 제주도 내 20여 곳을 관광하며 98명의 종사자들과 접촉하여 많은 피해를 일으켰던 미국 국적 강남구민 모녀가, 1년에 걸친 손해배상 청구소송 결과 원고 제주도가 패소함에 따라 책임을 면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규칙을 위반해 얻는 이익을 위해 공공의 비난을 기꺼이 감수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과 언론을 통해 알려져 공분을 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면, 이제는 이러한 시민의식을 반영한 도덕 이상의 규범이 제정될 때라고 본다. 법 만능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듭해 현실화되고 있는 공공의 피해에 대해 자제해 달라는 호소는 더 이상 우리 사회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준희 미국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