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안전한 곳은 없다…특별한 관심 필요한 도시공간 안전디자인
전 세계가 급격한 도시화, 지구온난화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빈번하게 목격하는 건물의 부실공사, 재난에 대처하지 못하는 도시기반시설의 안전문제, 차량에 의한 보행자의 피해소식 뿐만 아니라 대형산불,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해안침식과 파괴의 빈도가 더욱 잦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안전에 대한 욕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안전은 특정한 영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가치를 담보하는 원초적인 조건이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과 정책이 필요하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도시가 형성되고 발전하게 된 이유는 도시가 경제, 문화, 보건, 안전에 대한 인간의 욕구와 필요성을 충족시켜주고 지켜주는 효율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들은 거대함과 화려함에 대한 집착만큼 시민들의 안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각 분야에서 도시의 안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적용되고 있지만 시민들의 우려를 해소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많은 도시들이 산업도시, 문화도시, 경제도시, 창의도시와 같이 매력 있는 도시를 목표로 경쟁하고 있지만 안전도시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보기는 어렵다. WHO의 국제 안전도시, EIU의 세계안전도시, UNDRR의 국제안전도시와 같은 다양한 국제적인 안전도시 인증기준이 있지만 대부분 안전관련정책, 프로그램, 거버넌스를 위주로 평가되고 있어서, 일반인들이 도시생활에서 안전을 체감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WHO인증 국제안전도시 28곳, UNDRR인증 국제안전도시 3곳이 있다. 울산시는 UNDRR국제안전도시로, 남구는 WHO국제안전도시로 인증을 받았다.
울산은 타 도시들에 비해 도시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고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는 산업도시로서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도시의 경제적 풍요를 제공하는 산업시설과 공간이 동시에 도시의 안전을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예술, 경제, 복지의 풍요로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시의 안전이 담보 되어야만 한다.
울산시는 2015년 ‘울산광역시 산업단지 안전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수립해 산업시설과 산업공간에서 안전을 위한 실제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2022년 ‘서울 안전디자인 매뉴얼’을 제정했는데 이 매뉴얼은 주로 건설산업현장의 안전디자인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러한 차이는 각 도시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시민들이 생활하는 ‘도시공간에서의 안전디자인’에 대한 정책이나 가이드라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공간 중에서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시민들의 생활공간인 보행공간의 안전디자인이다. 보행공간의 안전디자인은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보행자공간은 사람들이 이동하고 교류하는 공존의 공간이며 자동차와 사람이 접촉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공간을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등의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한다. 그 중 시각과 촉각은 물리적인 공간을 지각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도시에는 안전을 위해 다양한 시각적 장치들이 사용된다. 신호등, 경고등, 경고푯말, 경고패턴 등은 다양한 방법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도시가 형성되는 초기에는 여유로운 도시공간으로 인해 시각적 장치들의 인식이 수월하고 이로 인한 의미전달이 용이하지만, 도시가 성장하고 공간밀도가 높아지면서 시각적 장치들은 그 효과를 쉽게 상실하게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도시안전디자인을 깊이 고민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안전디자인 정의를 빌려 도시공간안전디자인을 정의하자면 ‘도시공간 안전디자인이란 도시공간의 시설, 공간 등을 디자인 할 때 전체 생애주기를 고려해 주 기능의 안전달성도를 높이고 타 기능과의 상승적 연계나 통합을 통해 안전성, 사용편의성, 사용자 특성을 동시에 고려하는 디자인’으로 정의할 수 있다.
안전은 산업단지만이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이 펼쳐지고 있는 도시공간에서도 세밀하게 지켜져야만 한다. 이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도시공간의 안전디자인에 대해 실효성 있는 정책과 디자인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