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14)]폭염 속 처서매직

2023-08-22     이재명 기자

폭염이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견우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七夕)날이고 내일은 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처서(處暑)이건만 낮기온은 연일 30℃를 훌쩍 넘는다. 이상기후가 심해지니 24절기도 안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계절은 가을로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다.



오늘밤이 당신들 만나신단 그날이라면/ 어두운 저 하늘을 온몸으로 가겠어요./ 당신들의 발 아래 철철철 피 흘리며/ 까마귀 까치처럼 머리를 벗기운들/ 아려오는 기쁨으로 목줄기가 탈거예요.// 오늘밤이 당신들 만나신단 그날이라면/ 차디찬 은하물 건져 튼튼히 몸을 씻은/ 당신들 앉아 가실 수레가 돼야지요…. ‘칠석’ 일부 (도종환)
 

칠석은 중국의 <제해기(薺諧記)>에 처음 나타난다. <제해기>는 한대(漢代)의 괴담을 기록한 책이다.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나 그 동안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지는데 이날에는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다. 칠석 하루 전에 내리는 비는 상봉의 눈물이고 이튿날 내리는 비는 이별의 눈물이라고 한다. 견우와 직녀의 눈물을 ‘쇄루우’(灑淚雨)라고도 하는데, 눈물이 비처럼 흩뿌려진다는 뜻이다.

견우 직녀가 만나는 은하수는 은빛 강처럼 보인다고 해서 은하수(銀河水)라고 불렀다. 어떤 사람들은 ‘미리내’라고도 불렀다. 미리내는 용(龍)의 옛말인 ‘미르’와 내 천(川)이 합쳐진 말이다. 은하수는 그리스 신화에도 나온다. 제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헤라가 잠들었을 때 몰래 젖을 물렸는데 놀란 헤라가 헤라클레스를 밀쳤다. 사람들은 이 때 뿜어져 나온 것이 젖이라고 생각해 ‘밀키웨이(Milky Way)’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로 다음 날인 처서는 ‘더위(暑)가 그친다(處)’는 뜻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처서매직’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처서매직이란 처서와 magic(마법)의 합성어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다가도 처서가 지나면 한풀 꺾인다는 뜻이다. 이날 부인들과 선비들은 여름 동안 젖은 옷이나 책을 음지(陰地)에 말리는 음건(陰乾)이나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했다. <농가월령가> 7월령에는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擧風)하고, 의복도 포쇄하소”라는 대목이 나온다.

칠석과 처서가 지나면 더위가 한풀 꺾일까? 더위를 식히기 위해 억지로라도 거풍하고 포쇄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