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96)]김제 금산사 육각다층석탑

2023-08-25     경상일보

모악산 남쪽에 금산사가 있다. 통일신라 때 진표율사가 중창해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이 된 곳이다. 홍예석문을 들어서자 녹음이 짙다. 여름 복판이라 태양은 뜨겁고 매미소리 맹렬하다. 보제루 계단을 올라 절 마당을 들어선다. 금산사의 중심을 이루는 웅장한 두 건물이 넓은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화엄의 세계로 들어가는 대적광전과 미륵장육상을 봉안한 미륵전이다.

금산사 너른 마당은 석조유물 전시장이다. 여러 보물들이 여기저기서 위용을 뽐낸다. 그 중 육각다층석탑(사진)은 원래 봉천원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다. 대적광전 정면을 살짝 비켜나 다소곳하게 자리를 잡았다. 붉게 꽃을 피운 배롱나무와 늙은 산사나무가 심심할까봐 미륵님이 고이 가져다 놓은 공예품이다. 큰 고요함인 대적(大寂)의 공간에 여법하다. 석탑은 정면 7칸의 수평으로 긴 대적광전, 수직으로 쭉 뻗어 올라간 삼층의 미륵전과 조화를 이룬다. 모악산이 만들어 내는 부드러운 산세와 어울린다.

고려 불교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장식을 중시했다. 통일신라의 방형삼층석탑에서 벗어나 육각이나 팔각의 다층석탑을 만들어 부처의 세계를 찬탄했다. 금산사 육각다층석탑은 벼루를 만드는 흑색의 점판암으로 조성됐다. 몸돌은 대부분 없어지고 지붕돌만 연화대 위에 차곡차곡 올려놓았다. 지붕돌의 밑면에 새긴 풀꽃 무늬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지만 귀중한 보물이라 철 난간을 넘어갈 수 없다. 아쉬운 마음에 탑돌이만 한다. 몸돌은 위의 두 개 층만 남아있는데 각 면마다 모서리 기둥이 있고 면석에는 원을 그린 후 그 안에 좌불상을 선각으로 새겼다. 몸돌이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면 자못 화려하고 위풍당당했을 것이다.

설법전을 돌아 나오는데 담장 아래 봉숭아꽃 빨갛다. 그 곁에 붉노랑상사화 녹색의 긴 줄기 끝에 서럽게 피었다. 화엄과 용화의 세계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