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김유석 ‘처서’
혼자 살다 가는 이의 유품 같은 날이었다.
지난다는 말, 물러간다는 기별 다시 오지 못한다는 뜻으로
울음보다 긴 적요를 끌고 다음 생을 건너는 늦 매미.
한 철 오독하던 느릅나무 무거운 그늘을 벗는 하오.
속곳처럼 편안해진 외로움을 오수 속에 널어놓고
끝물의 고추 솎으러 가는 홀어미 선 꿈자리 말.
메밀잠자리 날면 오이를 걷고 메밀을 놓을 때
쓰다만 유서처럼, 박박 기던 길 넝쿨째 끌려 와
몇 날을 밭귀에서 식는 오이 몸통에 누런 젖꼭지가 두엇.
한 번뿐인 생이 여러 번 다녀가듯 혼곤한 날이었다.
시골의 처서 풍경, 그 ‘편안해진 외로움’
더위가 누그러들지 않아 처서 지나는 줄도 몰랐다. 처서는 말 그대로 더위가 한풀 꺾이고 가을을 맞이하는 날이다.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속담도 있는데 요즘엔 오히려 가을 모기가 극성이라 이도 옛말이 됐다. 그래도 새벽녘엔 제법 서늘한 기운이 도는 걸 보니 계절은 어김없이 가고 오는 모양.
시인은 처서를 ‘혼자 살다 가는 이의 유품 같은 날’이라고 했다. 살포시 다가오는 가을의 쓸쓸함이 물기처럼 배어있는 구절이다. ‘무거운 그늘을 벗’고 ‘다음 생을 건너는’에서, 매미처럼 여름의 껍질을 벗고 가을로 건너가는 처서의 의미가 잘 드러난다.
그다음엔 처서날 텃밭의 풍경이 묘사됐다. 이번에 시인은 처서를 ‘한 번뿐인 생이 여러 번 다녀가듯 혼곤한 날’이라고 표현했다. 메밀에게 자리를 내주고 걷어버린 오이 넝쿨. 첫물에서부터 차례차례 달리다 노각으로 늙어버린 오이가 바라보는 생일까, 혹은 투명한 빛을 받으며 언젠가 꼭 이런 날이 있었는데, 자울자울 몰려오는 졸음 속에서 기시감이 드는 오후의 적요일까. 어정칠월을 지나 건들팔월로 넘어가는 시골의 처서 풍경, 그 ‘편안해진 외로움’.
송은숙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