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여는 중견시인 시집 잇따라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중견 시인들이 머리로 생각하고, 가슴으로 새길 수 있는 시집을 잇따라 펴냈다.
◇조남훈 <추억은 정지된 풍경이다>
조남훈 시인이 자신의 다섯 번째 시집 <추억은 정지된 풍경이다>를 펴냈다. 조 시인은 5부에 걸쳐 ‘요양원의 캐롤송’ ‘잊고 싶은 추억’ ‘겨울나비’ ‘용병이 되어’ ‘내 사랑 도둑맞기를 기도하는 시편들’ 등으로 66편의 시를 수록했다.
‘눈 오는 날 만나자는 약속/ 아직도 유효하다며/ 오지 않는 널 기다리며/ 슈퍼에서 손톱이 뜨거워지도록/ 즉석복권 긁어댔지만/ 하느님도 무심하지/ 꽝꽝 소리만 안겨 줘/ 팥죽 끓는 가슴으로/ 시벌시벌대며/ 김밥천국도 천국이라며/ 살아서 입적했다/ 길은 눈 속에 파묻히고/ 어디고 긁어대던 눈발은/ 그 버릇 못 버리고/ 창문을 긁어댔다’ ‘김밥천국’ 전문.
팔순을 넘긴 조 시인의 시집은 생활 속의 일과 함께 자기 고백의 시로 가득하다. 참신한 시적 이미지들이 가식 없는 시인의 내면 풍경으로 잔잔한 공감을 준다.
조남훈 시인은 1962년 충청일보에 작품발표로 창작을 시작해 <미시령을 넘으며> <지적도에도 없는 섬 하나> <숲에는 門이 없다> <봄날이 환하게 아프다> 등을 펴냈다. 1964년 결성한 잉여촌을 비롯해 한국가톨릭문인협회 회원, 울산북구문학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143쪽, 1만3000원, 빛남출판사.
◇정춘근 <지뢰꽃>
철원을 노래하는 정춘근 시인이 첫 시집 <지뢰꽃> 증보판을 출간했다. ‘지뢰꽃’은 정 시인의 등단작이기도 하다. 지뢰 위에 뿌리를 내리고 피는 꽃, 그러나 지뢰가 폭발하면 찢겨지는 슬픈 생명을 의미한다. <지뢰꽃>은 총 4부 64편의 시가 쌓였다.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 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지뢰꽃’ 전문.
목숨을 걸고 지켜야 했던 땅과 인생, 차마 내뱉지 못하고 삼킨 한의 정서가 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평생 고향을 잃어버린 이웃의 아픔과, 나아가 살점과 영혼을 빼앗긴 이들의 기억이 얽히고설켜 평화를 향한 기도를 올린다.
정춘근 시인은 1999년 실천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지뢰꽃 마을, 대마리> <수류탄 고기잡이> <황해> <반국 노래자랑> 등을 썼다. 현재 고향 철원에서 글쓰기 지도와 문맹 퇴치 봉사 운동을 하고 있다. 122쪽, 1만원, 실천문학. 전상헌기자 honey@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