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16)]가을 전어(錢魚)

2023-09-05     이재명 기자

방사능 오염수 문제가 시끌벅적해도 먹을 건 먹어야 한다. 제철 음식을 먹는 것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다. 가을 전어(錢魚) 이야기다. 전국이 전어 축제로 떠들썩하다. 사람들은 가을이 와서 전어를 찾는 게 아니라 전어 소식을 듣고 가을이 온 걸 느낀다고 한다.



시인이여,/ 저무는 가을 바다로 가서 전어나 듬뿍 썰어달라 하자// 잔뼈를 넣어 듬성듬성한 크기로 썰어달라 하자/ 바다는 떼지어 헤엄치는 전어들로 하여 푸른 은빛으로 빛나고/ 그 바다를 그냥 떠와서 풀어놓으면 푸드득거리는 은빛 전어들// 뼛속까지 스며드는 가을을 어찌하지 못해 속살 불그스레 익어/ 제 몸속 가득 서 말의 깨를 담고 찾아올 것이니…(후략) -‘가을 전어’ 일부(정일근)
 

전어는 돈 전(錢)자에 물고기 어(魚)자를 쓴다. 맛이 좋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단 돈 주고 사고 본다 해서 전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씹을수록 기름지고 맛이 풍부하다.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 서울에 파는데 값을 따지지 않고 사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는 기록이 있다.

전어는 4~6월에 산란을 마치고 여름 동안 영양분과 지방을 많이 축적한다. 그래서 가을이 되면 지방량이 봄에 비해 세 배가 되고 고소한 맛이 최고조에 이른다. 전어는 지난 2000년대 초 양식에 성공했다. 5월에 치어를 풀어 10월에 수확하는데 자연산과는 달리 먹이량 조절 등으로 균일한 맛을 유지한다. 미식가 중에서는 자연산보다는 양식을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어는 2년 이상 자란 18㎝ 내외의 크기가 맛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은 것은 전어사리, 중간 크기는 엿사리, 큰놈은 대전어 등으로 부른다. 20㎝가 넘는 큰 전어는 떡전어라고 한다. 회를 써는 방법에 따라 뼈째 썬 것을 ‘세꼬시’라고 하고, 뼈를 발라내고 살을 길게 썬 것을 ‘포를 뜬다’고 말한다.

가을 전어는 회나 무침으로도 먹지만 연탄불에 구워 대가리부터 먹는 게 별미다. ‘집나간 며느리 전어냄새 맡고 돌아온다’ ‘가을 전어 머리엔 깨가 서 말’이라는 말은 전어 구이를 말하는 것이다. ‘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 문 잠그고 먹는다’는 말도 우스개소리로 자주 회자된다.

전어축제가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때마침 가을장마도 이젠 끝물인 것 같다. 세상은 시끄럽지만 계절은 영락없이 오고 간다. 잠시 세상사 잊고 오늘 전어나 한 접시 해보자.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