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열의 고용노동 이슈(9)]정부 근로시간제도 개편 논의와 쟁점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한 경제 및 산업정책은 민간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규제 강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규제 중심 정책으로 노동비용 상승을 통해 민간부문 고용을 더욱 위축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30% 수준이 부실 징후를 보이는 가운데 보호무역주의의 확산,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상황에서 노동시장의 규제 강화는 생산 자동화,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한계기업의 폐업, 외국인 투자위축이 맞물려 고용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유럽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와 다국적 인력 공급업체 ‘아데코’가 발표하는 ‘세계 인적자원 경쟁력지수(The Global Talent Competitiveness Index·GTCI)’에 따르면 한국은 노사협력 부문에서 OECD 38개국 중 24위로 중하위 수준에 그치고 있다. 특히, 해외인력 유입·여성인력 고용 등 측정하는 매력도 부문 순위는 33위, 직업교육·직업능력 개발 등 인재의 성장 가능성을 측정하는 성장성 부문 순위는 25위, 노동생산성 등 직업·기술 역량 부문 순위는 28위로 비교적 낮았다. 경직된 노사관계가 한국의 인적자원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고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디지털 인력공급에 따른 법적·제도적 환경 변화에 대한 조직의 사람경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미래 성장을 위한 협업 네트워크의 주체는 사람이라는 인식과 함께 다른 세대를 이해하고 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을 규율하는 법과 제도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1953년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은 큰 골격 변화 없이 70년간 유지되고 있으며, 노사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1987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현재의 제도로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의 노동법은 동일 시간, 동일 장소에서 일하는 집합노동을 전제한 획일적인 규제에 기반하고 있어 일하는 방식의 다양화에 맞춰 현행 근로시간 제도를 개선하고 유연성을 확장하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특히 IT업계의 과도한 장시간 근로는 포괄임금 관행, 야간근로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로 실제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포괄임금 오남용 방지 및 야간근로자 보호조치 등에 대한 제도적 조치가 마련되야 한다.
정부는 근로시간제도 개편을 통해 노동자들이 상황에 맞춰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노동계에선 몰아서 일할 수는 있겠지만 몰아서 쉴 수는 없을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더구나 최근 MZ세대 청년들이 주축인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 등 8개 노조 연합체인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평균 노동시간이 많은 한국이 연장근로 시간을 늘리는 것은 노동조건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왔던 국제사회 노력에 역행하고, 주요 국가에 비해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데다 주 52시간제가 안착되지 않았다는 점이 반대의 논리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MZ세대는 근로시간 개선의 긍정적인 측면보다 장시간 노동이 근로자 건강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제도개편으로 정당한 보상 없이 연장근로가 늘어나는 상황과 근로자의 자율적 선택보다는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 재량권 확대로 법적 노동시간이 길어져 과로로 인한 위험이 증가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기업의 노동 선호도를 제고하고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하고 노사관계 선진화 및 노사 간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원하는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과 기관을 지원해 기업이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재정위기가 우려되는 가운데 직접 일자리에 의존한 고용창출의 효과성은 미비할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으로 성장 잠재력과 재정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다양한 일자리 형태와 근무방법의 변화를 고려한 기업의 인적자원관리 변화와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정부의 고용정책 변화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기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의 노동통계국과 같이 노동통계를 수집·관리·분석해 통합형 임금정보 시스템을 활용해 노동시장의 구조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통계자료를 확보해 체계적인 임금직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산업별 임금체계 검토, 기업임금정보공시 도입 등 획기적인 혁신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임금체계가 없고, 최저임금 수준을 단일임금으로 활용하는 다수의 중소기업이 그나마 체계적인 임금체계를 구축하고, 합리적인 인사관리 제도를 도입할 수 있도록 대중소기업 협업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윤동열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대한경영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