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320)]붙어야 산다-씨앗들의 여행
가을이 깊어가는 시골길을 걸어가다보면 불청객들이 떼로 덤빈다. 바지는 물론 소매, 머리털에까지 달라붙는다. 이름들을 일일이 부를라치면 도깨비 바늘, 도꼬마리, 가막사리, 쇠무릎(우슬) 등이다. 이 네가지 식물은 그야말로 ‘도깨비’ 아니면 ‘귀신’에 다름 아니다. 이놈들을 뜯어내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놈은 집 안방까지 따라와 성가시게 한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에 의하면 옷에 달라붙는 열매 식물은 총 29종류에 이르는데, 이들은 동물 털이나 사람 옷에 붙어 씨를 퍼트린다.
멀고 긴 산행길/ 어느덧 해도 저물어/ 이제 그만 돌아와 하루를 턴다// … // 나의 남루한 바짓가랑이/ 한 자락 단단히 움켜쥐고 따라온/ 도꼬마리씨 하나// 왜 하필 내게 붙어 왔을까?/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 // 이러구러 함께 온 도꼬마리씨 같은/ 아내여, 내친 김에 그냥/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도꼬마리씨 하나’ 일부(임영조)
도꼬마리(사진)는 국화과의 한해살이풀로, 산우엉이라고도 한다. 일본말처럼 들리지만 ‘됫고마리’에서 온 순 우리말이다. 자세히 보면 가시 끝이 휘어있는 갈고리 모양을 하고 있다. 때문에 한번 옷에 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여러 용도로 많이 쓰이는 이른바 ‘찍찍이’는 도꼬마리 씨앗을 보고 발명한 것이라고 한다. ‘찍찍이’의 진짜 이름은 벨크로 테이프다. 1941년 스위스의 엔지니어 조르주 드 메스트랄이 개와 함께 사냥을 나갔는데, 돌아와보니 개 털에 도꼬마리가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이 모습을 눈여겨 본 그는 도꼬마리 가시를 모방한 장금장치를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도깨비바늘은 꽃이 지고난 뒤에 열리는 가늘고 긴 열매를 말한다. 흡사 바늘처럼 생겼다고 해서 도깨비바늘로 불린다. 한방에서는 귀침초(鬼針草)라고 한다. 귀신의 침처럼 살갗을 콕콕 찔러댄다. 도깨비바늘은 번식력이 얼마나 강한지 웬만한 풀밭은 도깨비바늘로 뒤덥혀 있다.
가막사리는 뿔이 2개 달린 도깨비 모습을 꼭 닮았다. 가막사리는 도깨비바늘 보다도 더 무섭다. 가막사리 밭에 잘못 들어갔다가는 온 옷이 벌집이 된다. 우슬(牛膝)은 줄기가 소의 무릎처럼 생겨서 쇠무릎이라고도 한다. 좁쌀만큼 작지만 몸 구석구석 안 파고 드는 곳이 없다.
바야흐로 들판은 가을이다. 논길, 밭길에 각종 도깨비들이 도사리고 있지만 그래도 안 나가보면 후회할 것만 같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