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위험한데 성장도 걱정 ‘딜레마’
2023-10-20 신형욱 기자
그만큼 현재 한국 경제가 긴축이나 완화 등 한 방향의 통화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위기를 한꺼번에 맞고 있다는 뜻이다.
2.0%p까지 벌어진 미국과의 금리 격차나 원/달러 환율 상승, 다시 급증하는 가계부채 등을 고려하면 기준금리 인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수출·소비 부진 속에 성장 경로가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라 한은으로서는 소비·투자 위축과 대출 부실 위험 등을 감수하면서까지 올리기도 쉽지 않아 19일 동결이 결정됐다.
우선 현재 기준금리 인상 요인으로는 가계대출과 환율, 물가 불안이 꼽힌다.
한은의 ‘2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62조8000억원으로 1분기 말(3월 말·1853조3000억원)보다 0.5%(9조5000억원) 늘었다.
가계신용은 각종 대출에 결제 전 카드 사용액까지 더한 포괄적 가계 빚(부채)이다. 통화 긴축의 영향으로 작년 4분기(-3조6000억원)와 올해 1분기(-14조3000억원) 잇따라 뒷걸음치다가 세 분기 만에 다시 반등했다.
빚을 내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다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체 은행권과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지난달 각 4조9000억원, 2조4000억원 또 늘었다. 4월 이후 6개월 연속 증가세다.
지난 7월 말 미국(기준금리 5.25~5.50%)과의 금리 역전 폭이 역대 최대인 2.0%p까지 벌어진 뒤 원/달러 환율 상승과 자금 유출 압박도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물가도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 3.7%로 아직 한은의 전망 경로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으로 앞으로 유가가 빠르게 오르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은 다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한은이 기준금리를 선뜻 올리기에는 경기와 대출 부실 관련 위험이 너무 큰 실정이다.
2분기 성장률(전 분기 대비 0.6%)이 1분기(0.3%)보다 높아졌지만, 세부적으로는 작년 하반기 이후 수출 부진 속에서 성장을 홀로 이끌었던 민간소비(-0.1%)마저 설비투자(-0.2%), 정부소비(-1.9%) 등과 함께 뒷걸음쳤다.
그나마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어 순수출(수출-수입)만 늘면서 겨우 역성장만 피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더 오르면 이자 부담 등에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는 위축되고,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을 중심으로 부실 대출 ‘폭탄’까지 터질 위험이 있다.
지난 8월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록을 보면, 금통위원들도 이런 딜레마 상황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금통위원은 “앞으로 물가는 대체로 당초 전망 경로를 유지할 것이나, 성장의 하방 리스크(위험)가 커진 반면 금융 불균형은 확대됨에 따라 정책목표간 상충 관계가 심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한은의 딜레마와 동결 기조가 내년 초까지 이어지고, 내년 2분기 이후에나 미국의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과 함께 한은도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내년 2분기 소비 둔화에 대응해 금리 인하를 시작하면 한은도 내수 부진 등을 고려해 2분기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경기 상황에 따라서는 한은의 인하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기가 예상보다 더 나쁠 경우, 미국보다 한은이 금리를 더 먼저 내릴 수도 있다”며 “더구나 시장의 장기 금리가 빠르게 낮아진다면 한은의 인하 가능성은 더 커진다”고 분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