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2023-11-20     경상일보

언론의 선정적 거짓 왜곡 보도로 인한 피해는 실로 치명적이다. 말이나 글도 사용방법에 따라 총칼 같은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잘못된 언론이 가하는 공격은 물리적 폭력을 초월한다. 전에 읽었던 영화로도 만들어진 노벨상 작가 하인리히 뵐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다시 읽어 보게 되었다. 황색 언론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한 소박한 소녀 카타리나가 어쩌다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1974년 2월24일 일요일 독일 일간지 기자가 살해되었다. 살인범은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27세의 평범한 여인, 범행후 제발로 경찰에 찾아와 자신이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자백한다. 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고자 화자(話者)는 2월20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닷새간의 그녀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녀의 명예를 치명적으로 훼손한 언론사 기자를 살해한 동기가 서서히 드러난다. 카타리나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가정관리사로 일하면서도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성실한 태도로 주위의 호감을 사던 선량한 여인이다. 어느 날 한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함께 밤을 보낸다. 이튿날 경찰이 그녀 집에 들이닥쳐 가택 수색을 벌이고 급기야 그녀를 연행한다. 괴텐은 은행강도에 살인 혐의까지 받는 인물로 언론과 경찰에 쫓기고 있었다. 카타리나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중이라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세간의 호기심의 대상이 된다. 저속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선정적 언론이 괴텐과의 관계, 그녀의 유년시절, 대인 관계, 가정사까지 왜곡되게 들추어냄으로써 그녀의 명예와 인생은 처절하게 파괴된다.

근면하게 살며 차곡차곡 삶의 기반을 일구어 왔던 여인의 진술이 왜곡되면서 허위 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저질스런 언어, 그리고 폭발적으로 호응하는 군중의 욕설 등이 난무하는 장면은 오늘날 시각에서도 낯설지 않다. 소설은 언론에 의한 명예훼손적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카타리나의 기자 살해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그녀가 용의자와 놀아났다는 식의 선입견을 배제하고 객관적 태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일부 언론의 왜곡 허위 보도는 개인에 대한 공격을 넘어 정치적 목적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특히 공적 인물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노골적으로 공격한다. 지난번 대선 전날 공영방송이라는 MBC의 PD수첩이 대장동 사건 주범 김만배와 민노총 언론노조 신학림씨 간의 인터뷰를 짜깁기한 뉴스타파 방송물을 그대로 내보낸 일이 있었다. MBC의 노조가 ‘대장동 사건이 윤석열 검사의 봐주기 수사에서 출발했다는 취지의 가짜뉴스로 미디어를 악용한 부정선거나 다름없다’는 비판 성명을 내기는 하였지만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뇌송송 구멍탁’이라 거짓 선동한 네티즌 주장을 확산시킨 방송을 환기시킨다.

필자도 구속된 사건 브로커의 허위 과장된 제보를 좇는 PD수첩의 일방적 전화에 순진하게 응대하다가 통화가 불법 녹음되고 짜깁기 편집당한 경험이 있다. 거짓 왜곡 보도의 공격을 받게 되면 사실을 말해도 구차한 변명으로 치부된다. 피해자의 실추된 명예는 회복하기 어렵고 피해자의 실존은 이미 파괴되었다. 오늘날 인터넷 발달로 가짜뉴스는 순식간에 전파되고 계속 유령처럼 떠돌기 때문에 폐해는 실로 엄청나다. 악마적 편집 방송은 흉기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언론 종사자들이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허위 왜곡 보도를 하는 자들은 ‘저널리즘’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다. 법치의 보호막 속에서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짜깁기 가짜뉴스는 범죄 행위나 다름없다.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표현의 방종이 맞을 것이다. 정보 생산에 있어 우월적 독점적 위치에 있는 언론이 잘못되었을 때 엄정한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박기준 변호사 제55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