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울산도 ‘명품’ 도시 브랜드 슬로건을 만들자
‘결초보은’. 최근 충남 법주사를 가기 위해 보은을 찾았을 때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보은군으로 접어들자 곳곳에 이런 슬로건이 보였다. 영화촬영지로도 유명한 보은의 관광명소인 속리산 말티재 꼬부랑길 정상(해발 430m) 휴게소에는 아예 큰 바위에 ‘結草報恩’이라고 새겨 놓았다. 처음에는 ‘고사성어로 기발하게 도시를 홍보하구나’ 생각하며 피식 웃으며 가볍게 지나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법주사가 있는 보은이라는 지명이 ‘풀을 묶어 은혜를 갚는 의리의 고장’으로 내 머릿속에 함께 각인돼 남아 있었다. 이런 게 바로 각 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개발하려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도시 이미지를 높인다는 점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홍보와 공유에 세부 목표를 두는 행정 슬로건과 구분이 된다.(박대아·김숙정, 2022).
올 9월 정년퇴직한 뒤 두어 달간 등산을 겸해 전국의 유명 사찰을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도로 변에 눈에 띄는 그 지역 슬로건을 음미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개중에는 충남 보은군처럼 눈에 속속 들어오는 슬로건도 많았다. 전남 해남은 ‘땅끝 해남, 설렘의 시작-한국 여행의 시작’을 슬로건으로 한반도의 땅끝 고장이 해남이라는 것을 알렸다. 이 슬로건 만 보고도 해남 땅끝마을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이 있는 경북 영주시의 슬로건은 ‘선비의 품격’. 영주시로 접어들면서 자연스레 옷깃을 한번 더 여미게 했다. 한려수도와 케이블카 등이 있는 경남 통영은 ‘약속의 땅’으로 커플 관광객을 유혹했다.
그러면 울산은 어떨까?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산업으로 대한민국 산업화와 선진화를 주도한 울산. 김두겸 시장 취임 이후에는 에쓰오일과 현대자동차, 고려아연 등 대기업들의 수 십조 원에 이르는 투자가 잇따라 한국의 산업생태계를 새로 만들고 있는 도시다. 거기에다 서북쪽으로 영남알프스가 도시를 병풍처럼 에워싸 자연재해를 막아주고, 태화강과 동천강 회야강이 도심을 관통해 동해로 흘러드는, 그야말로 산과 강과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도 간직한 도시가 울산이다.
나는 울산을 처음 찾는 지인들에게 농담처럼 울산을 이렇게 소개한다. “경제력이 풍부한 서울의 ‘울’과 자연경관이 빼어난 부산의 ‘산’을 따온 게 울산이다. 서울과 부산의 장점만 갖춘 도시가 바로 울산”이라고.
그동안 ‘산업수도’ ‘생태도시’ ‘창조도시’ 등 새 시장이 취임할 때마다 울산의 슬로건도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울산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내고, 언론계 생활 35년 대부분을 울산에서 보냈어도 나의 과문한 탓인지 울산의 슬로건으로 내 머리에 뚜렷이 남은 게 없다.
이제라도 울산을 함축적으로 가장 잘 나타내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을 새로 만들면 어떨까. 기발하고도 울산시민에게 대한민국 선진화를 이끈 도시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그러면서 외지인들에게는 꼭 한번 가보고 싶고, 살고 싶은 도시로 각인될 수 있는 슬로건으로.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8월부터 올 5월까지 슬로건 공모를 해 ‘SEOUL, MY SOUL’을 새로 만들었다. 미국 뉴욕시도 1977년 만들어진 ‘I♥NY’ 슬로건을 올해 ‘WE♥NYC’로 리브랜딩했다. 울산도 전국 공모를 통해 공모하면 서울과 뉴욕 못지않는 참신한 울산의 새 슬로건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KTX 울산역 맞은편 산허리와 이예로-동해남부선의 시계(市界), 태화강 국가정원과 울산대공원 등에 울산의 새 슬로건이 내년에는 걸렸으면 좋겠다.
정재락 전 동아일보 부·울·경 취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