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김양희 ‘버려지는 것들-중산간·5’
지구의 문짝 하나가 어디쯤에서 휘어졌을까
수많은 문짝들, 그것들을 이은 셀 수 없이 많은 경첩들 중에서
몇 개의 나사가 튕겨져 버린 걸까
걸어가는 길 사이로 밭들이 삐걱삐걱 소리를 낸다
어긋난 경첩이 내는 소리들을 눈으로 보는 고통이라니
밀감과수원 나무 아래 노랗게 무덤이 된 농익은 밀감들과
갈아엎어져 흙 속에 묻힌 양배추 월동 무 브로콜리들
채소들의 홀로코스트다
생산량 예측불가와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어긋난 경첩처럼 오래된 미래*를 삐걱거리게 한다
저 낮은 밭담들은 다시 무언가를 담고 비우고를 되풀이 하겠지
이른 봄인데 계절풍은 스스로 제 이름을 잊은 듯
한여름 햇살을 데려와 푹푹 살찌우고 있다
이게 다 지구의 작은 문짝 하나가 휘어진 탓이다 그 문짝을 이은,
셀 수없이 많은 경첩의 나사 몇 개가 튕겨져 나간 탓이다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고 무심히 걸어가 버리면
저 버려지는 것들이 지르는 비명에서 도망칠 수 있는 건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더이상 외면하지 말아야할 지구온난화의 경고
제주에 사는 시인은 한라산 중산간 지역에서 밭째 버려진 채소들을 보고 ‘채소들의 홀로코스트’라고 표현하였다.
물론 ‘생산량 예측불가’와 ‘수요공급의 불균형’이 초래한 일일 수도 있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이른 봄에도 한여름 같은 지구온난화, 기후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일이다.
시인은 지구를 집에 빗대어 그 불균형을 ‘지구의 문짝’이 휘어지고 ‘경첩의 나사’가 튕겨져 나간 것이라 하였다. 이 휘어짐은 농업의 미래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 자체를 삐걱거리게 한다.
이것이 우리가 ‘버려지는 것들’이 지르는 비명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저 버려진 채소, 저 한겨울의 진달래, 저 비닐을 삼킨 거북은 하나의 예징이자, 이미 우리의 비명을 대신 질러주고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곡비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므로.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