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어르신, 식사만 하고 가시려는 건 아니죠?

2023-12-18     경상일보

21세기 현대에는 굶어죽는 사람보다 외로워서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른바 ‘고독사’가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은 이후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2020년부터 제정돼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1인가구의 증가와 개인주의의 팽배 그리고 군중 속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은 외로움과의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음을 암시한다. 사회 일선에서 한 걸음 물러나 노년을 보내고 있는 어르신들도 예외는 아니다. 빈 둥지 증후군이란 말도 있듯이 노년층의 외로움은 사회복지의 주요 안건이 된 지도 오래다.

저출산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있는 시대에 이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 자명하다.이에 대해, 남구는 노인 대상의 다양한 복지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우선 사회·경제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노인일자리를 제공하고,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는 어르신들에게는 노인 맞춤돌봄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또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응급안전안심서비스를 추진하고, IOT를 활용한 위기상황 자동 신고 체계도 활용하고 있다.

노인 복지정책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사실 노인이 이용할 수 있는 사업들은 이미 적잖이 갖춰져 있다. 기초연금과 노인복지시설 관리까지 포함해 노인복지에만 2023년 한해 약 1249억이 편성돼 있다. 남구의 사회복지 예산 중 3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고령화 시대 노인 복지 지원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노인들의 활동적인 삶에 대해서도 논의해볼 시점이라 생각한다. 앞서 지적한 외로움과 그에 따른 우울감은 노인이라는 속성 그 자체에서 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연령에 기인한 일상의 사소한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노인의 운동량과 사회활동이 증가하고, 가족 또는 지인들과 소통하는 시간이 늘자 우울 증상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즉, 노인의 일상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는 말이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업의 하나로 경로식당의 가능성에 주목해 봤으면 한다.

남구는 현재 경로식당 7곳을 운영 중이다. 주로 복지관에서 함께 운영한다. 비용은 점심식사 한 끼 1000원, 저소득층 어르신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하루 평균 1300명이 넘는 노인들이 찾을 정도로 규모가 큰 사업이다.

주목할 점은 경로식당 운영 기관이 주로 노인복지관·종합사회복지관이란 점이다. 경로식당을 운영하는 기관에서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경로식당을 이용하는 많은 어르신들이 식사만 끝내고 귀가하는 것이 아닌 식사 후에도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시작점으로 경로식당이 활용될 수 있다.

아울러 남구의 모든 경로식당은 지상에 위치해 접근성이 용이하다. 이런 이점을 활용해 더 많은 노인들이 경로식당을 찾고, 만남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여유롭고 쾌적한 분위기를 제공함이 바람직하다. 환기도 잘 되지 않아 음식 냄새가 가득한 어둑한 곳이라면, 누구나 꺼릴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여가 활동을 고민하기도 전에 자리부터 뜨고 싶을 것이다. 누구나 여유롭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식사하기를 원하지 않는가?

여기에 과거 식사만 제공했던 경로식당의 명칭 변경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 교수의 권유대로 식당의 명칭을 경로식당에서 ‘만남마당’으로 바꾸는 등 변화를 모색하려는 시도도 좋다. 이러한 시도는 노인 복지 사업의 목표와 방향성을 제시하면서 노인의 활동적인 삶을 위한 초석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경로식당은 식사 제공이라는 목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기능적 완성을 논하기는 이르다. 향후 경로식당의 방향성을 재조정하고 추진력 있게 시행한다면, 어르신들 일상을 책임지는 ‘만남과 문화의 광장’의 경로식당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서경수 울산 남구청 복지교육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