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아이디어가 실제로 병원에서 현실로 되기까지

2023-12-19     경상일보

지난달 세계 최초로 스마트워치가 미 FDA에서 의료기기로 승인된 일이 있었다. 마시모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의료용 스마트 워치 ‘마시모 W1’이 주인공이다. 그동안 기존 워치 안의 일부 기능이 인정된 경우는 있었으나 스마트 워치 자체가 의료기기와 동일한 평가를 받아 승인된 경우는 이게 처음이다.

언젠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은 했다. 휴대가 가능한 간단한 소지품 등에서 신체의 건강정보를 감지한다는 건 의료분야 미래를 논할 땐 기본으로 나오는 이야기였다. 사실 대략 10년 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이고,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가지고 있는 스마트워치에 심전도 재는 기능이 있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식의료기기로 인정받은 첫 사례는 올해에 와서야 이뤄진 것이다.

왜 이리 시간이 걸린걸까? 기술력 문제가 첫째고, 의료기기인만큼 심사가 까다로웠을 것이다. 방금 심사가 까다로웠을 것이라는 간단한 문장은 그 속사정이 굉장히 빡빡하다. 이를 우리나라와도 연관해서 한번 살펴보자.

FDA에서는 의료기기와 약물의 적합성을 평가, 승인한다. 과거 스탠퍼드 대학의 존 이오아니다스라는 전염병 학자가 저명한 학술지에 실린 약물 관련 논문 101편 가량을 찾은 후, 20년 후 그 중 얼마나 현실화 되어있는지 결과를 살펴봤는데 임상시험에 들어간게 27개, 그 중 약물 시판 승인을 받은 것은 5개 밖에 되지 않았다. 20년 동안 5%만이 결과를 본 것이고, 그 5개 중에서도 이익이 있었던 것은 단 한 개였다고 한다. 이렇듯 어떤 아이디어 혹은 연구결과가 자금을 얻어 임상시험을 갖게 되는 것도 쉽지 않고 거기서 효과를 확실히 입증해 FDA의 인정을 받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렇게 미국에서 승인이 됐다고 한국에서도 100% 바로 승인이 되는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FDA의 역할을 하는 기관은 NECA인데, 외국에서 승인된 약제, 의료기기 혹은 기술들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기술들도 NECA에서 신의료기술로 인정을 받아야 사용이 가능하다. 만약 이 과정을 성공하면 그 다음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하는 절차가 남아있고, 이후 그 약제, 의료기기, 기술에 대한 수가(가격)이 정해진다. 수가는 해당회사에서 마음대로 정하기 힘들며 특히 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되는 항목(급여항목)으로 포함될 경우 더더욱 그렇다. 만약 적정한 가격이 책정이 안되면, 손익에 불리한 점을 안고 제품을 판매해야 하는 제약, 의료기기 회사들은 아쉽게도 사업에서 손을 떼거나 활용이 제대로 안되어 사장이 되는 경우도 생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약품과 의료기기는 엄격하게 심사되어야 한다는 것에 누가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근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에 지역 최초로 도입된 AI 기반 심장기능 예측프로그램 딥카스 등은 그런 과정을 거친 것이기에 도입 유무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중대한 역할을 하는 의료기기 말고도 병원에는 업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소소한 아이디어 및 기술들이 꽤 있지만 실제로 활용되는 것들은 적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환자가 정맥주사로 수액을 맞고 있을 경우 다 맞으면 당연히 수액바늘을 제거하고 지혈을 해야한다. 보통 간호사가 수시로 관찰하다가 제거해주지만 응급실 등에서 바쁘게 환자들을 보고 있는 경우 그 과정이 조금 늦어질 수도 있다. 수액바늘 제거를 조금 늦게 한다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뭘 맞고 있는지 모르는 환자 입장에선 ‘이걸 언제 떼어야 하나, 떼어달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등 마음 속에서 작은 불안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대부분 제거해달라고 간호사에게 이야기하지만 응급환자나 중환자 등으로 너무 바삐 움직이고 있으면 그런 이야기하는 것도 조심스러워 한다. 필자는 이런 상황에 딱 어울리는, 수액이 얼마만큼 남아있다고 모니터링을 하는 기기를 의료박람회에서 본 적이 있다. 아 이거다 싶어 프로토타입 구매의사를 밝혔는데 그게 5년이 훌쩍 넘었다. 담당자는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했고, 이후 매년 어떻게 되어가냐 물어봤었는데 결국 아직까지도 그 기기는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위에 설명한 과정들 중 어딘가에서 보류됐을 수도, 수익모델을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여러모로 안타까운 일이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