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문화도시 울산을 위한 ‘울산 콘서트홀’을 기대하며
12월22일에 연주된 울산시립교향악단의 마지막 곡은 하이든(Haydn)의 교향곡 45번 고별(Farewell)이였다. 한 해의 마지막이 되면 자주 연주되는 곡이기도 하지만, 이날은 지난 6년간 울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지휘자로 활약하던 니콜라이 알렉세예프의 마지막 ‘고별지휘’여서인지 더욱 애틋한 감정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그의 지휘 아래 울산시립교향악단은 수준 높은 음악을 울산시민들에게 선물했고, 문화도시 울산의 상징이 되었다.
각 도시를 대표하는 교향악단은 도시 문화수준의 척도로 인식된다.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알려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그 도시의 문화적 차별성과 우월성을 나타내는 표상이다.
한 해의 마지막이 다가오면, 전 세계의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새해 첫날 오스트리아 빈의 황금홀(Golden Hall)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를 기다리고 있다. 공연장인 황금홀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인 테오필 한센(Theophil Hansen)이 고대 그리스 신전을 모티브로 설계한 장방형의 박스형 공간으로, 신고전주의 양식의 화려한 장식과 풍만하면서도 명료한 음향으로 유명하다. 음악회 입장권의 조기매진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 수많은 국가로 신년음악회가 생방송으로 중계 된다. 황금홀에서의 연주실황은 전 세계에 문화도시 빈을 알리는 최고의 수단이다.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으로 상징되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홀은 기존 연주홀의 형태와 기능을 넘어선 혁신적인 공간구성으로 주목 받았다. 건축가인 한스 샤룬(Hans Scharoun)은 공연장의 무대를 건물 중앙에 배치하고 객석을 16개의 구역으로 나눈 빈야드 스타일(Vinyard Style), 즉 경사지에 조성된 포도밭의 형태와 같은 공간구성을 제시했다. 구두상자와 같은 박스형의 콘서트홀에 익숙해 있던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음악을 공연장의 공간적, 시각적, 심리적 중심에 놓고, 객석의 청중들이 동일한 조건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한 그의 시도는 이 후 세계의 많은 유명한 콘서트홀(Concert Hall)의 전형이 되었다.
울산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한 국내의 많은 공연장들은 극장형식으로 건축되어 있다. 극장형식이란 오페라, 뮤지컬, 무용, 연극과 같이 공연의 진행이 막(幕)과 장(章)으로 구분되고 무대 디자인이 작품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공연을 위해 만들어진 공연장이다. 일반적으로 무대와 관객석이 거대한 액자 프레임과 같은 벽(Proscenium Arch)을 경계로 분리되어 있고, 무대뒤쪽(Backstage)은 공연을 지원하는 다양한 공간과 장치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공연자와 관객은 공간적으로 단절되어 있고, 관객석의 거대한 발코니로 인해 음향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콘서트홀형식은 박스형이든 빈야드스타일이든 간에 오직 음악공연만을 위한 공간구성으로 이루어진다. 출연자 대기실외에는 별도의 백스테이지 공간이 없고, 무대주변이 모두 객석으로 둘러싸인 개방적 구조로 되어있다. 간혹 무대 뒷면이 합창단석과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으로 구성된 공연장도 있다.
클래식음악 공연장은 기계음향이 아닌 자연음향을 사용한다. 따라서 공연장의 잔향(殘響)을 중심으로 한 음향설계는 수준 높은 공연장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이다. 이를 반영해 국내에서도 클래식 전문 콘서트홀을 건립하기 위한 노력들이 활발하다. 대구시는 대구시민회관으로 사용되던 극장형식 공연장을 박스형의 콘서트홀로 리모델링해 대구 콘서트하우스로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주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웃도시 부산에서는 빈야드스타일의 콘서트홀 건축이 한창이다. 예정대로라면 2025년 개관연주회를 개최하고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주 공연장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특별히 지방 콘서트홀에서는 유일하게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콘서트홀로서의 매력을 뽐 낼 것이다.
1990년에 창단된 울산시립교향악단은 수준 높은 클래식음악을 통해 시민들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시키고 문화도시 울산의 상징으로 큰 역할을 담당 해왔고, 6년 후면 창단 40주년을 맞이하게 된다. 이제 울산도 품격 있는 문화도시 구현을 위해 클래식음악 전문 공연장인 ‘울산 콘서트홀’의 건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가능하다면, 웅장하고 화려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콘서트홀이면 더욱 좋겠다. 문화와 산업이 공존하는 ‘균형 잡힌 도시(Balanced City) 울산’을 위한 큰 걸음이 필요하다.
이규백 울산대 교수·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