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봉산과 그린벨트에서 레저공간으로
과거 울산에는 ‘봉산(封山)’이 많았다. 봉산을 국어사전에서는 ‘예전에, 나라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지하던 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백과사전의 설명도 문장이 좀 더 길 뿐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어쨌든 봉산은 금산(禁山)과 함께 쓰이고, 왕가의 태실을 보호하기 위한 태봉봉산, 황장목을 생산하기 위한 황장봉산 등이 있었다고 하니 주요 시설 보호나 목재 생산이 봉산 설치의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에 편찬된 조선왕조의 법전 <속대전>에는 경상도에 봉산이 7개소 있다고 하고, <만기요람>에는 14개소가 있다고 전한다. 조선 후기의 울산 지도를 보면, 영축봉산, 안봉봉산, 대운봉산, 용굴봉산, 대천봉산, 고산봉산, 대양봉산 등 7개소가 확인된다. 만기요람을 근거로 하더라도 경상도 봉산의 절반이 울산에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런데 이들 봉산은 대체로 지금의 청량읍, 온양읍, 서생면, 웅촌면 등에 해당된다. 게다가 웅촌의 대양봉산을 제외하면 모두 현재의 개발제한구역(이하 ‘그린벨트’)과 겹친다. 우연의 일치이지만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같은 곳의 산림보호가 이어지고 있는 점이 재미있다. 봉산의 위치도 흥미롭다. 대체로 회야강과 청량천 등의 소하천이 봉산쪽에서 흘러내리는데, 벌채한 재목을 운반하기 쉽게 해 준다.
울산에 이처럼 봉산이 많았던 것은 경상좌병영과 경상좌수영 등 군사시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울산선생안>이나 <구강서원지>같은 자료를 보면 서원을 짓거나 객사를 수리할 때 “좌병영의 허락을 받아서 봉산의 재목을 벌채해서 썼다”는 내용이 있다. 이로 미루어 봉산은 군사용 목재 공급이나 관급용 재목을 생산하기 위해 지정했고, 일반인의 소나무 벌채를 금했다. 그런데 울산지역 봉산과 소금 생산도 깊은 관계가 있다. 즉, 조선시대까지 소금은 전략물자로 병영과 수영에서 관리했다. 따라서 병영의 관리 속에 삼산연점, 대도염전 등에서 소금을 생산하면서 봉산의 소나무 숲에서 나온 솔가지 같은 부산물이 소금가마에 불을 지피는 연료로 쓰였을 것으로 보인다.
봉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린벨트 활용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이다. 그린벨트에 속한 숲은 1895년 을미년 지방제도 개혁 무렵부터 1973년 개발제한구역 지정까지 약 80년간은 크게 훼손되었다. 대부분 국유지였던 이 숲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인 등 민간에 불하되고, 산판 사업 등을 통해서 조선왕조가 관리하던 재목은 잘려 나갔다. 그뿐 아니라 소나무와 솔잎을 비롯한 산림 부산물이 주민들의 난방과 취사용으로 쓰이면서 숲은 끊임없이 훼손되었다. 심지어 현재의 그린벨트도 숲은 무성하지만 수목 관리에는 힘이 부치고 토지형질만 바꾸지 못하도록 관리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그린벨트는 문자 그대로 ‘개발만 제한’해서 현상 유지만 할 뿐 그다음 단계의 정책적 방향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행 제도 속에서 그린벨트에 속한 산지와 숲을 당장 활용하는 방안은 없을까.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은 임도를 레저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남창 대운산이나 청량읍 화장산 등에는 임도가 잘 정비되어 있다. 필자는 건강을 위해 주말이면 이런 임도를 자주 찾는다. 임도이다 보니 경사는 완만하고, 숲길이 있어서 햇살도 피할 수 있고 조망도 좋은 곳이 많다. 임도를 걷다 보면 등산객과 만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예외 없이 조우하는 그룹은 자전거와 산악바이크를 타는 이들이다. 연인이나 가족끼리 찾기도 하고, 동호인들의 산악바이크가 열지어 달리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본다. 다들 헬멧과 고글을 쓴 본격적인 라이딩 마니아들이다. 바이크 넘버를 보면 부산에서 온 이들이 많다.
이처럼 산악 레저를 위해 울산을 찾는 이들을 위한 그린벨트 활용 방안을 마련해 보자. 동해선 전철에 속하는 서생, 남창, 망양, 덕하역은 모두 그린벨트 안에 있다. 이들 역은 안봉, 용굴(용골), 영축, 고산, 대운 등의 봉산이 속한 그린벨트와 가깝다. 먼저 역에서 이들 코스와 직접 동선을 연결해 주자. 그리고 봉산이 군사 목적에서 비롯된 만큼, 봉산의 의미와 닿아 있는 말타기 체험, 전투 게임, 산악 달리기, 산악자전거와 바이크 등 야외 레저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해 보자. 그린벨트 활용으로 시민들의 여가와 건강에 기여하고, 관광자원으로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 소장·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