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분옥 시조시인의 시조 美學과 절제]이조년 ‘이화에 월백하고’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임금을 그리는 심경, 아름답고 애절한 노래로
봄밤, 배꽃 핀 뜨락에 달빛이 파도처럼 출렁일 때, 임을 멀리 둔 이의 심정은 어떠하랴.
은하는 깊은 밤하늘을 가로질러 흘러가고 이런 봄밤에 누구에게나 한 가닥 봄마음을 꽃 피우지 않을 수 있으랴. 그리하여 마침내 잠 못 드는 봄밤을 꼬박 지새우고 마는 것을, 그 누구를 탓하랴.
이 시조는 여인이 멀리 둔 정인(情人)을 그리는 심정과도 같고 어린 소녀가 새잎에 부는 바람에도 보송보송 솜털 이는 첫 봄, 첫 미음을 노래하는 것도 같다.
그러나 이 시조는 고려 후기의 대학자이자 문신인 이조년의 시조다. 그는 고려 충렬왕과 왕자와의 갈등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았으나 화를 입고 유배됐다. 그때 임금님을 그리워하는 대학자의 심경을 이리도 아름답고 애절하게 읊은 것이다. 그는 우리의 시조 율격에 얹어서 애환을 노래한 것이다. 이 시조는 청구영언 등에 실려 전해지고 있다.
달빛 환한 배꽃 핀 봄밤을 뜰에 내려서서 걸어본 이는 알 것이다. 차마 환장할, 이 봄밤을 유배 온 학자는 임금을 그리워할 것이요, 달빛은 임금의 얼굴로 보일 것이다. 작자 스스로 환해져서 달빛을 비추는 그 역전의 묘를 노래한 것이다.
그나저나 봄밤은 또 하루 무너지고 말 것을 자규(두견새)는 어찌 노학자의 한 가닥 봄마음 그 충정을 알랴 만은 그 피맺힌 소리에 숨어있는 애련의 정한을 슬쩍 빗대어 자신의 정한을 밀쳐 두는 멋으로 하여 오히려 독자에게는 미적 감흥이 오래간다.
종장에서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하는 천만 가지 정한이 일어 잠 못 드는 노학자의 머리맡이나, 하마 정한이 무엇인지도 모를 열여덟 풋 소녀의 풋정이나 봄밤의 정한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시조는 우리의 심중에 살아서 해마다 오는 봄밤을 설레게 하는 것이다. 명작의 생명률이 시조의 율격에 얹혀 천년을 관통하는 것이다.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