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암공원 개발에 존폐 달린 마을
2024-01-15 오상민 기자
14일 오전 울산 동구 방어동 슬도 인근. 마을 진입로를 지나자마자 낙후된 주택 100여채가 눈에 들어온다. 판자나 기와집이 대부분이다. 담벼락에 금이 가거나, 판자 지붕이 기울어진 집도 곳곳에 보인다. 마을 진입로는 차량 1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다. 제대로 된 포장 도로는 찾을 수 조차 없다. 이 곳은 울산을 대표하는 무허가촌인 성끝마을이다.
이 마을은 대왕암공원 부지 안에 위치한다. 해방 이후 일본인이 남긴 건물 등 몇 안 되던 동네에 무허가촌이 형성된 것은 1960년 즈음이다. 마을규모는 대왕암공원 전체 면적의 약 6%(6만2000㎡)를 차지한다. 1962년 대왕암공원 부지로 지정돼 땅 대부분은 국유지이며, 대부분 건물은 철거 대상인 불법건축물이다.
현재 임시공영주차장 기준으로 윗마을 27가구, 아랫마을 90여가구 등 총 117가구, 293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보일러가 고장나 온열매트에 의존해 겨울을 난다. 지붕이 기울어지거나 파손돼도 제대로된 수리는 엄두도 못낸다.
불이 나면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2월 마을 한 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도로가 협소해 소방차량 진입이 늦어지면서 1시간22분여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집 2채가 소실되고 이재민 4명이 발생하기도 했다.
불법건축물에 거주하고 있지만 이 마을 주민들도 취득세를 낸다.
또 정부와 5년마다 계약을 체결하고 대부료(주거 사용료)도 지불한다. 일반 시민들처럼 세금과 사용료 등도 모두 납부하고 있지만, ‘공원부지 내 불법건축물’이라는 이유로 금간 담벼락, 기울어진 지붕 정비는 물론 소방도로 개설 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울산시와 동구청은 대왕암공원 내 호텔, 리조트 등을 조성해 체류형 해양관광 명소 육성방안을 갖고 있다.
동구청이 지난 2022년 이와 관련한 ‘대왕암공원 체류형 관광지 지정 용역’을 추진했지만, 토지구획정리 단계에서 제동이 걸려 1년여 정도 용역추진이 중단된 상태다.
대왕암공원 일원 해양관광 명소 육성방안은 성끝마을 존폐와도 직결된다. 이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게 되면 성끝마을 이주문제 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사업의 시작과 다를바 없는 용역이 중단돼 마을 주민들도 이주 등 생계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관광 활성화를 위한 대왕암공원 개발사업에 공감한다. 다만, 마을 전체 이주가 아닌 윗마을 주민을 아랫마을로 이주시켜 상부 부지를 개발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아랫마을의 공원부지를 해지해 이곳을 경남 통영의 ‘동피랑 마을’과 같은 골목 관광지로 정비하자는 게 이들의 구상이다.
성끝마을대책위원회는 “수십년째 착수했다 좌초되길 반복하는 개발사업으로 주민들은 보금자리 걱정에 잠 못들고 있다”면서 “공원부지로 낮아질 만큼 낮아진 보상금에 타지 정착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또 이들은 “이곳에 줄곧 살아왔지만, 당시 토지 신청을 하지 못했기에 공원부지에 무허가촌이 형성된 것”이라며 “우리도 세금을 내는 시민”이라고 하소연했다.
대책위는 “(공원)용도가 변경된다면 오래 거주하고, 매년 임대료 개념의 비용을 내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부지 매입 우선 협상권이 필요하다”면서 “부산 감천문화마을처럼 관광지 안에 마을과 주민이 있는 것이 관광객에게 따스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문옥 동구의원은 “행정기관은 그들 보금자리에 거주하게 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희망고문할 것이 아닌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상민기자 sm5@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