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스타(스스로 타는 별)’가 되기를 바라면서

2024-01-31     경상일보

“공부를 하면, 진심으로 공부하면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의 저자 고미숙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치열한 입시 환경과 괴리감이 있는 이상주의적 발상이라고 여겼지만, 내심 그 빛나는 얼굴을 만나고 싶다는 기대를 하면서 근무해 오고 있다. 이런 친구들을 종종 만났지만, 최근 만났던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대개 수능 이후 3학년 학생들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며 그간 갖지 못했던 개인적 여유를 가진다. 그런데 3학년 학생 중 몇 명이 ‘시 처방 힐링 음악회’ ‘참여형 토론 연극’ 홍보지를 보고, 후배들의 기회를 뺏는 게 아니라면 참여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흔쾌히 승낙하자 행사 진행 요원으로서 의자 배치, 무대 준비, 저녁 식사 배부 및 마지막 뒷정리까지 열심히 도와주었다. 입시가 끝났기에 스펙을 위한 생활기록부 기록이 필요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히고 오후부터 저녁까지 남아 진행요원으로 활동해 준 것이 대견했다. 늦은 시간까지 뒷정리를 도와주던 L은 지난 3년 내내 행사가 있을 때마다 묵묵히 진행을 도와주었던 학생이었기에 더욱 고마웠다. 늦은 시간 귀갓길이라 차로 태워주던 길에 L은 불쑥 ‘감사합니다’라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선생님, 지금까지 다양한 교내 행사에 꾸준히 참여했어요. 솔직히 생활기록부를 채울 다양한 내용을 위해 참여하면서도, 부족한 학업 시간 때문에 참가 신청을 망설인 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언제나 행사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가슴이 뛰었어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저도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동기 유발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이끄는 교내 행사는 정말 진심으로 참여했어요.”

늦은 저녁인 데다 운전하고 있던 터라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진 못했지만, L의 얼굴이 빛나고 있음을 느꼈다. 의과 대학에 진학하게 된 L은 학업 성적도 좋았지만, 진심 어린 마음으로 공부를 ‘잘’해왔던 것이다.

‘수단으로서의 공부’가 아닌, ‘공부가 삶이 되는 공부’ ‘자신만이 아닌 타인까지도 위하는 공부’가 되는 다양한 교내 행사를 고민했었다. 물론 교내 체험 활동의 표면적 홍보는 ‘생활기록부 기재 가능’이었지만, 입시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진심으로 참여하다 보면 참된 공부로 자연스레 이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L이 전한 말은 교사로서의 가슴을 뛰게 했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2월 졸업생 중에는 L 학생 외에도 얼굴에 빛이 나는 학생들이 꽤 많다. ‘스스로 타는 별’을 ‘스타’라고 하는 이행시처럼, 이들이 졸업 후에도 지속해서 참된 공부를 찾아 결국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스타’가 되길 응원한다.

이혜경 울산 천상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