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새해 벽두(劈頭), 울산 문화예술을 힘차게 빚어내기를

2024-01-31     경상일보

갑진년 새해의 여명이 밝은 지 한 달이 되었다.

용틀임하듯 솟아오른 태양은 올해 들어 벌써 서른 번째 아침을 찬란하게 빚어놓았다.

오늘 아침, 불현듯 ‘빚다’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우리나라에는 명절을 맞아 만두나 송편을 빚는 풍습이 있다. 어떤 집에서는 고두밥과 누룩을 버무려 가양주(家釀酒)를 빚었다. 도공(陶工)은 흙을 차지게 이겨서 도자기를 빚는다. ‘빚는다’는 것은 온 정성을 다해 ‘새것을 만들어내는 장인 정신’을 함유하는 단어이다.

얼마 전 권오룡 울산시 체육·문화정책자문위원이 경상일보에 기고한 칼럼 ‘새해엔 예술인들에게도 회관건립 소식을 기대하면서’를 의미 있게 읽었다. ‘더 큰 울산에는 울산사람들이 있다’라는 2024년 시정 운영목표를 표방(標榜)한 울산시가 주요정책과제의 하나로 울산특화 문화, 관광, 체육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을 집중발굴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울산 문화예술인들을 고무(鼓舞)하기에 충분하다.

광역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예술단체의 업무공간을 한데 모은 장소가 마련되지 않은 울산에는 그들을 수용할 ‘예술인 센터’의 건립이 절실하다. 민선 8기의 ‘문화도시 울산’이 말만이 아니라 열악한 예술인 단체의 사무실과 회의, 간단한 공연, 전시 등을 수월하게 개최할 최소한의 인프라를 하루 속히 구축해야 할 시점에 왔다.

김두겸 시장이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이라는 시정(市政)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문화예술에 쏟는 관심이 남다르고, 연전에 문화관광체육 발전을 위해 애쓴 이상찬 국장을 재기용한 것을 필두로 울산 문화예술계의 숙원인 가칭 ‘예술인회관’의 건립이 탄력을 받았으면 한다.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봄이 오기 전에 밭을 갈고 씨앗을 준비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이 지역 문화예술의 획기적 발전을 위한 기틀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사실, 시(市)에서도 시민들의 감성을 어루만져 주는 정책을 입안하고 여건을 조성하는 문화예술과가 가장 힘든 부서 중 하나라 생각된다. 주민의 정서와 마음 깊은 곳을 풍요롭게 하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꿀잼 문화도시 울산’의 문화예술정책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살아 숨 쉬는 울산 예술의 융성을 통해 시민들이 인간미 넘치는 철학적 삶을 향유함으로써 울산광역시의 중점시책이 머지 않은 날 화룡점정(畵龍點睛), 성과를 내기 바란다.

특히, 문화예술의 괄목상대(刮目相對)할 만한 발전을 위해 그 첫째 필요충분조건인 ‘예술인회관’ 건립은 울산시와 유관기관, 기업, 예술문화단체를 중심으로 합심하여 조속히 한 삽의 흙을 뜨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일찍이 공자는 ‘남상(濫觴)’의 비유를 통해 양자강(揚子江)의 거대한 물줄기도 처음에는 술잔을 띄울 정도의 조그만 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이 사업은 작은 실천으로부터 시작하여 훗날 울산 문예부흥의 초석으로 기록될 것이다.

혹자는 일을 반쯤 끝내지 않고는 시작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으나 기미독립선언서에 언명(言明)한 것처럼 ‘착수가 곧 성공’으로 이어지리라 믿는다.

과거 산업화, 공업화 우선 정책으로 상대적으로 취약한 울산의 문화예술이 올해 시정 운영 방향에 발맞춰 명실상부한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매력 도시’로 한 발짝 나아갔으면 한다. 더불어, 다각적으로 노력하는 이희석 울산예총 회장을 비롯한 예술 단위 협회장들의 협력을 바탕으로 낙후한 문화예술이 힘차게 용솟음치기를 희망한다.

필자도 그간 울산문인협회 일을 맡아왔으나 이제 잠시 소임을 접지만 울산의 문학과 문화발전을 위한 관심은 절대 놓지 않을 것이다.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장인이 정성을 기울여 옹기그릇을 빚듯이, 새해 벽두부터 문화예술을 잘 반죽하고 치대면 다부진 작품 하나 빚어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권영해 시인·전 울산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