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박소란 ‘향기로운 밥’

2024-04-22     전상헌 기자

살뜰히 지어낸 한 그릇 밥, 여기
투명한 봉분이 있다 쌀통 안 옴질대던 바구미 한마리 제 숨을 부려놓았다

평생을 두고 탐닉한 몇톨의 실박한 세계 그 어느 틈엔가
이렇다 할 묘표도 망석도 없이 조용히 빈 몸을 안장시켰을 것이다

열망의 모양대로 동긋이 굽은 등과 잦은 시련을 걷던 다리 다시금 길을 밝히던 더듬이까지
모두 이 속에 고스란히 흐무려졌을 것이다
한 평생 코 박고 몰두하던 곳
그곳에 죽어 묻힌다는 것 영원히 하나의 세계만을 신봉한다는 것 과연

성자의 최후라 읽어 마땅할 잠언의 기록
선연한 계시가 그릇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제상 앞 향탁에 머리를 조아리듯 조심스레 숟가락을 들자 기꺼이 한술 밥으로 퍼올려진 바구미 한마리

향긋한 잠이 주린 입속을 감돈다

 


쌀 향한 바구미의 치열한 몰입과 탐닉

하얀 쌀밥 위에 검은 바구미 시체가 나왔나 보다. 시인은 밥에서 이물질이 나온 부주의함을 탓하기 전에 밥 속에 코를 박고 죽은 바구미에 대해 사유한다.

둥근 고봉밥은 그대로 무덤의 모양이니 바구미는 제 무덤에 엎드려 스스로 곡을 하는 셈. 쌀을 씻을 때 뜨물과 함께 쓸려가지 않았다는 것은 쌀알에 깊이 들어가 먹는데 몰두하고 있었다는 것. 비가 와서 마당에 널어놓은 곡식이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을 읽었다는 강태공의 일화처럼 미곡경(米穀經)을 읽느라 천지의 변화를 잊고 있었는가.

흔히 바구미를 백성의 고혈을 빠는 탐관오리에 비유하기 쉬운데, 시인은 오히려 그 몰입과 탐닉을 높이 평가하여 ‘하나의 세계만을 신봉’하는 ‘성자의 최후’라고까지 표현한다.

물론 과장된 비유이지만 시속에 휩쓸리는 장삼이사의 행보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화두(話頭)에 몰두하는 치열함에 가점을 주어, 마치 제문을 짓듯 시 한 편을 지어 올린 것이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