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포옹과 새로운 발걸음/김경완 구술자 ④]"우리 부모들이 막 고생한 세대들이거든, 우리 부모 세대들한테는 최소한 마이 베풀어 주고 해야 되는데..."
울주문화원이 2023년 진행한 아카이빙 사업 2023 디지털 생활사 아카이빙 '마지막 포옹과 새로운 발걸음 - 울주군 신리 마을 사람들의 생업을 중심으로'를 통해 채록한 일화를 게재한다.
10명의 기록가별로 면담한 구술자의 이야기를 그대로 남았다.
사라지는 울주군 신리마을을 기억하고 구술자들의 삶속에 남아있는 신리마을의 기억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며 구술자들의 생활을 되돌아 본다.
이번 면담은 김경완 구술자와 김영해 기록가의 이야기를 일부 각색하여 들어보도록 한다. (편집자주)
- 무서운 자연의 힘을 느끼며 운행한 낚시 배
낚싯배 하셨던 이야기를 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에, 낚싯배는 우리 친구가 인자 고무보트를 가지고 처음에 어… 최고 처음에 인자 내가 미역을 할 때, 진하에 있는 우리 후배가, 내 바로 밑에 후배가 고무보트를 가지고 낚시꾼을 태워가 왔다 갔다 하더라고. 그래가 내보고 인자 그때 어, “선배님, 요 낚싯배 함 해보이소. 낚싯배 하면 암만 그래도 미역 하는 거보다 나을 겁니다.” 이러더라고. 그때 나는 인자 벌로(예사로) 들았는 거라. 그래가지고 인자 계속하다가 동네 또 우리 친구가 고무보트를 하나 사가지고 낚싯배를 또 하더라고. 하다가 인자 주로 그거는 인자 갯바위에 내려주고 이라더라고. 그래 보니까 나도 그때까지만 해도 인자 뭐 다른 생활도 하고 뭐 일도 다니고 이랬거든. 그래 내리 오가지고 있고 막상 일도 하니까 나도 거 배가 있으니까, 배가 있으니까 낚시도 함 해봐야 되겠다 라고 해가, 그때 인자, 처음에 인자 하게 된 계기는 우리 저쪽에 저 비학 쪽에 보면 지금 저 원전이 생깄다 아입니까? 거기 인자 긴 방파제를 만들어 놨거든. 우리 거 데트라포트(삼각형 콘크리트)로 만들어가지고 엄청 크게 만들어 놨거든요. 그 지금은 인자 돌아가셨는데, 김00 여 동네 형님이라고 그분이 인자, 그분은 인자 몸도 불편하고 하니 놀기 삼아, 놀기 삼아 그물 조금 몇 폭 해가지고 거기를 놨는가 봐. 놓고, 우리 거 신리 김00 형님이라고 있는데, 인자 고 자기 사촌 동생이고 하니까, 그물을 땡기는데 보니까 감생이(감성돔)가, 감생이 이런 게 한 일고여덟(7~8) 마리가 잡혔더라고. 그래 감생이는 그물에 잘 안 잡히거든요. 그래서 요 ‘내가 낚시를 함 해봐야 되겠다. 감생이가 이렇게 잡히는 정도 겉으면 감생이가 엄청 많겠다’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가 내가 인자 처음에 내 혼자 가고, 또 내 아는 사람 불러 가지고 낚시를 하니까 인자 그때 감생이가 잡히더라고. 요 주위에는 그때 거 감생이, 감생이 낚시하는 데가 없었심더. 전부 다 완도권에서 저 전라도나 저쪽으로 다 고기 잡으러 갔거든. 그래가지고 인자 계속 인터넷에 인자 낚시사이트가 있어요. ‘뒤낚’, ‘후낚’, ‘인낚’, 이런 데가 있어. 그런데 계속 인터넷에 사진도 올리고 조항 정보를 올리니까 손님이 계속 늘어나더라고. 에, 그 때부터 인자 뭐 탄력을 붙어가지고 돈 엄청 벌었지요. 우리 동네 그 배 몇 척 없는데 거의 다 내 따(때)문에 낚싯배를 했으니까. 거 뭐 그때 뭐, 어떤 때, 어떤 때는 마이 나갈 때는 일곱(7) 척까지는 해서 다 줄로 달아 메놓고. 낚시하고 이러니께, 근데 내가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때 고기가 많았는고 하면, (웃음) 저 인자 거 신고리 일(1), 이(2) 호기 지을 때 고 앞에 비학 앞에 가두리 양식장을 했거든, 사람들이. 왜 했는고 하면 신고리 일(1), 이(2) 호기 들어오면 인자 보상 마이 받을라고. 엄청시리 고기를 마이 넣었는 거라. 감생이하고 뭐 이런 고기를 엄청 넣었는 기라. 그래 거 인자 파도가 오가 그 마 다 터지고 다 째져붓는 기라, 그럼 그 고기가 어데 가겠습니까? 그래 데트라포트 이런데 마, 아파트를 지아 놨으니까 거기 다 들어가 뿟는가 보더라고. 그래가 그때부터 계속 이때까지 뭐 엄청시리 고기를 마이 잡았지. 그때 돈 마이 벌었지요.
그러면 낚싯배를 운영하시면 무슨 허가라던지, 교육받는 거라던지 그런 게 있을까요?
예, 있었죠. 그 낚싯배를 할라면 일단 소형선박 조종면허사가, 면허증이 있어야 되고, 거 주기적으로 계속 교육도 받아야 되고. 거 까다롭습니더. 낚시 또 배도 낚시 검사를 자주 해야 되고. 어, 일(1) 년마다 해야 되고 하는 뭐 그런 기 낚싯배들 인자 사고가 제일, 저 전라도 쪽으로 큰 배들 한 스물몇 명씩 태워가다가 사고 나뿌고 죽고 이라니까, 낚싯배가 사고 나면 인사사고가 마이 나거든. 예, 이제 그래서 낚싯배에 그런 조건들이 마이 까다롭지.
혹시 선생님도 낚싯배 하시다가 사고 나신 적이 있으신가요?
예, 있지요. 거 나도 그때 어… 그때 갯바위 할 때, 갯바위라 하모 우리 여 돌이 좀 있잖아요? 인자 고게 인자 벵에, 벵에돔 잡는다고 사람들 이렇게 마이 풀어놨거든. 풀어놨는데, 갑자기 파도가 마~악 세졌는 거라. 근데 그 손님들은, 나는 요 안에 집에 있으니까 전화가 오면 나가는데, 갑자기 손님들은 인자 낚시에 심취하다 보면 파도가 센지 안 센지 몰라요. 그래 인자 파도가 인자 자기 인자 덮치고 오니까 인제 그때 전화가 왔는 기라. 그라모 파도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근데 갯바위 같은 데 옆에 돌이 있고 이라니까 배를 제대로 딱딱 붙이야 되는데 못 붙이잖아요? 그래 딱 인자 박자가 딱 맞으면 배 붙이면 빨리 팍 타고 해야 되는데, 인제 그게 인자 박자가 안 맞았어. 안 타니까 난 파도가 와도 배를 못 빼잖아요, 사람이 뛸라고 하는데. 그래 뭐 붙이가 있으니까 마, 마 여에 돌에 팍~ 때리면서 인자 앞 대가리 때리가 배가 그대로 홀랑 뒤집어뿟지. 그래도 사람들은 안 다치고. 그래서 고 뭐, 멀지 않으니까 헤엄치가 나오가지고 뭐, 이래 가지고 그래 다 마무리는 되었심더. 그래 그 이후에 내가 인자 트라우마가 생기더라고. 그 이후에 그래가 내가 한 이(2) 년 동안은 낚시를 안 했습니더. 낚시를 안 하고 마 다른 걸 했지. 바깥에 돌아다니면서. 와, 겁나가 몬 하겠더라고.
바다는 내가 조정한다고 되는 기 아니니까, 그죠?
예, 자연의 힘이 진짜. 물때는 필요 없고 날씨를 잘 봐야지. 날씨가 인자 보통 우리 거 너울 파도라고 해서 요래 보통 때는 잠잠하게 있다가, 하나씩 큰 게 오가지고 바위를 쓱 넘어버리는 거 있거든. 인자 고거를 잘 살펴야 됩니더. 그래 고 있다가 어… 고럴 때는 인자 못 내루는 거지. 으음, 그런 경우도 몇 번 있었거든.
그 갯바위 데려다주는 낚시꾼들 데려다주는 거와 선상낚시 하는 거와 그 요금은 차이가 있습니까?
갯바위 가는 데는 보통 한 여기서 좀 가까우니까, 요즘 얼마를 받는지 모르겠네, 한 이만(20,000) 원 받을 겁니다. 조(저)까지 들어가니까. 마 실어만 주니까. 이만(20,000) 원 받고 인자 우리는 선상이니까 미끼하고 이래 제공해 주고 이라면 한 칠만(70,000) 원 정도 받거든.
오전, 오후. 오전은 지금 같은 경우는 다섯(5) 시 반 정도 돼가 나가면 열두(12) 시 돼가 들어오고, 오후에는 한(1) 시정도 돼가 나가면 지금은 한 여섯(6) 시 정도 돼가 들어오고.
낚시꾼들은 보통 인자 손맛만 보러 오는 사람이 있고, 손맛만 보고 인자 고기도 인자 뭐 선장보고 알아서 하라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뭐 고기 잡아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어, 인자 선장들은 그런 안 가져가는 것들은 인자 못 잡은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한테 다 나눠 주는 거지.
그럼 낚시꾼들 오실 때 혹시 원전이 가까이 생겼잖아요? 가까이 없을 때와 있을 때의 낚시, 낚아오는 그 고기의 양을 다르게 이야기를 하시던가요? 느껴보신 것이 있는지.
뭐, 낚시꾼들은 고기만 마이 잡으모 좋아하니까, 뭐 뭐 그런 거는 없습니더. 우리는 그 고기가 최고 민감한 기 수온이거든, 수온. 어, 수온이 조금만 찹아뿌면(차가우면) 안 움직이니까. 낚시꾼들은 대충 자기들이 오모 압니다. 뭐 작기 잡고 마이 잡고를 떠나가 마이 잡아 가모 좋은데, 작기 잡아가면, 마 안 잡힐 때는 아하 오늘은 수온도 안 좋고 조건이 안 좋아가 안 잡힌다 고렇게 자기들 다 이해를 하지. 그게 꾼들 아입니까. 초보자들은 안 잡히면 마악 앓거든. 고기도 안 되는데, 그래 고기 안 되는 이유가 있을 거 아입니까? 그거 아무리 뭐 안된다 해도 그 됩니까? 자연의 이치에 따라가 되는 건데, 수온이 조금 따뜻해지면 고기들은 활동을, 우리도 글타(그렇다) 아입니까? 사람도. 여름에 활동 마이 하지, 겨울에 활동 마이 합니까. 똑같다니까.
우리가 고기를 잡아보면 알거든. 옛날에, 옛날에 우리가 뭐 한 십(10) 년 전만 해도 자리돔 자체가 없었거든. 없었는데, 지금 자리돔이 엄청시리 많거든요. 그라고 또 제주도에서 또 그, 또 자라는 그런 고기들이 이쪽까지 와가 있거든. 옛날에는 또 여기는 긴꼬리 벵에돔이 없었어요. 어, 근데 긴꼬리 벵에돔이 여기 지금 마이 잡히거든. 그런게 수온이 지금 마이 높아졌다는 결론이지.
혹시 원전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안 그러면 기후 온난화와 관계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거는 내가 뭐, 거기에 대한 따로 공부를 안 해봐가 모르겠는데, 뭐 원전도 관계 안 있겠습니까? 원전도 지금 뭐 일(1)호기만, 고리 일(1)호기만 뭐 영구 정지됐지, 지금 이(2), 삼(3), 사(4) 호기는 계속 운전 할라고 하거든. 하고, 또 우리 그 새울 원전도 일(1), 이(2), 일(1), 이(2)는 지금 돌아가고 있잖아요? 그래 바다에 가보면 인자 그 새울 원전 같은 경우는 우리가 바다 밑으로 터널을 뚫어서 칠십(70)매다(m) 밑으로 뚫어서 이렇게 물이 올라오거든. 그 온배수를 그래 해 놨다고. 그 취수구 쪽은 고래 해가지고 물을 자연스럽게 이제 흡입이 되고, 이거는 또 밑으로 해가 물을 빨아 들인, 내보내거든요, 우리가 가보면 물이 마악 뒤벼져. 그런 영향도 안 있겠습니까?
- 어촌계와 어업권 보상
그 마을에서 바닷가 원전에 들어가고 보상을 받으, 보상을 받으셨잖아요? 그 선생님 생각하는 만큼 어업권 보상이 제대로 됐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한수원하고 우리가 협의해가지고 어떤 용역 기간을 정하면, 우리는 앞전에 인자 다는 안 받았는데 내가 어촌계장 할 때 인자 일부만 받았거든. 뭐 한 삼십(30)프로(%) 놔 놓고 칠십(70)프로(%) 받았는데, 어… 그때는 부경대학교에서 했지. 부경대학교서 해가지고 감평사는 또 뭐 제일감정사하고 몇 군데 이래 했는데, 그기 인자 고런, 생산량에, 생산, 예를 들어서 신리 어촌계가 앙장구는 백(100)킬로(kg) 고, 어? 향어 이렇게 삼(3) 년 동안 했는 그게 앙장구는 백(100)킬로(kg)고 뭐 소라는 이백(200)킬로(kg)고, 뭐 그거는 삼백(300)킬로(kg)다, 이래 가 그거는 통계가 인자 그런 식으로 주니까 작지. 거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을 우리가 맨손어업이라던지 이런 것들은 안 들어 갔는 거지.
그러면 어촌계 계원들도 어업권 보상에 대해 만족은 하시는 안 한다 다들, 그죠?
가깝게 있다고가 아이고 조사 방법을 조금 다르게 해서 좀 마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을 했는 거지. 피해율도 좀 마이 높이고. 어, 인자 그래서 했는 방법이고. 해녀들도 좀 마이 받아 갈 수 있도록 서로가 연구를 했지. 음… 그래 인자 그 해녀들 마이 받아 갈 수 있게, 해녀들은 아마 다른데 비해 가지고 월등하게 마이 받았을 겁니다. 인자 우리 국내 최초로 에… 우리 그 어촌계 구역 아닌 외에 구역도, 외에 구역도 거 해녀 보상에 좀 넣어 달라. 그래서 인자 그거는 어쨌든 간에 이론적으로 서로가 인자 설득력 있게 서로가 인자 뭐 협의를 맞찬 거지요.
그러면 지금 이 낚싯배를 하고 계시는데 이주를 가시는 곳에도 바다가 있나요?
뭐 행정구역상 우리는 일부는 한 백삼십(130) 가구 정도는 행정구역상 우리 마을로 가는데, 어… 이제 가게 되면 어촌계도 보상도 받고 이래 버리면 인자 뭐 바다도 다 없어지는 거는 마찬가지고, 인자 이 항은 앞으로 인자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래 어, 이 항은 계속 폐항을 안 시키고 놔놓을 건지, 놔놓을 거 겉으면 거 우리 그 이주민들한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한수원에다 좀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뭐 어쨌든 이거를 이용을 해서 뭐 주민들이 뭐 소득증대 사업을 할 수 있다든지, 그 어민들이 좀 쓸 수 있다든지 이런 거는 서로 아직까지 이야기 중입니다.
혹시 이주를 하셔도 운행을 하실 계획은 있으신지?
이주를 하면 계속해야죠, 뭐 별 다른 기 없잖아요? 거 가모 손가락 빨고 살 수는 없는 기고, 어쨌든 뭐 벌어 묵는 사람은 벌어 무야 되니까, 우리 같은 아직 노친네도 아이고 젊은 층도 아이고 어중간 하이 이러는데, 이제 오십(50) 대 후반인데, 이래가 이런 사람들은 기존에 하는 거를 계속해서 인자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죠.
- 덤프트럭 운행
덤프트럭을 하신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덤프트럭은 요 지금 새울 삼(3), 사(4) 호기 여 건설하면서 인자 터 파기 하면서 어, 그때 나는 조금 늦게 들어갔지. 거 낚시 배 하면서 그때 조금 그런 것도 있어 가지고, 한 여기 이(2)년 정도 했을 겁니더.
우리 요 협회가 있으니까. 여 지역에 협회가 있으니까 거 뭐 가입해서 그래 해야 뭐 하루에 일도 이렇게 며칠 언제 들어가라, 언제 들어가라, 인자 이렇게 인자 배당이 내려오는 거지.
지금도 아마 고래 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그 사용자 측에서 개개인 별로 이렇게 접촉이 안 되잖아요? 그래 한 단체를 지정해서 그기에다 뭐 ‘오늘은 어느 구역에 작업을 하니까 차를 한 이십(20) 대 넣으시오’ 이라면, 그 협회서 이래가 해가지고 분배를 그래 하는 거지요.
하루에 얼마 정도 받으셨나요?
그때 하루에 얼마고? 하루에 한 삼십팔만(380,000) 원인가, 사십(400,000) 인가 잘 모르겠심더, 기억이 잘 안 납니더.
덤프트럭을 그럼 본인이 구입을 하셨어요? 안 그러면 임대를.
그때 나도 하고 내가 직접 샀지. 임대가 안 되거든요. 그래가지고 그때는 나도 레미콘도 하나 있었고, 덤프트럭이 두(2) 대… 두(2) 대가 있었나? 그랬심더. 다 돈이 안 되더라고. 해보니까 너무 일당이 약하니까. 기사, 기사 월급 주고 뭐 유류비 제하고 뭐 차 밑에 들어가는 거, 뭐 감가상각비 빼뿌니까, 또이또이라. 남는 기 별로 없더라고. 그래 자기가 자기 스스로 이래 하면 그래도 뭐 한 오륙백만(5~6,000,000) 떨어지고. 안 되겠더라고.
- 이주 마을의 변화에 대한 바람
우리 신리마을이 폐동이 되잖아요? 폐동이 되어도 혹시 여기에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그런 저기 될까요? 안 그러면 뭐 딱 다른 곳처럼 공장이 들어갔으면 펜스(fence)를 치고 사람을 못 오게 그렇게 되는.
펜스는 어데까지 치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봤을 때는 음… 아마 여기까지는 펜스를 안 칠 거 같애, 마을회관하고. 에… 이제 저쪽에 우리 지금 기존에 지금 울타리가 되어 있잖아요? 아마 그 기준으로 아마 될 거 같애, 보니까. 그래 여기는 주로 공원하고 스포츠센터 겉은 거하고 그런 계획이 돼있는 갑더라고.
모든 우리 그 아마 집 보상을 받아보면, 뭐 도로나 어디 편입된 데는 보상을 받아보면, 그 지가 측정을 어떻게 하느냐 보면 그 평수가 넓으냐, 그라고 그 평수 안에 집이 어떻게 지어졌느냐, 인자 그런 거에 따라가 다 보상기준이 달라진다 아입니까? 그라모 요 대지가 시가가 지금 얼마 정도 나오냐에 따라서 시가에 따라 어촌계 바다보상도 그 원리라 보면 됩니다. 똑같습니다.
- 이장의 역할과 임무
신리마을 이장님을 지금 맡고 계시잖아요? 이장님이 맡으신 일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 이런 데 대해서 설명을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장 이 업무는 마을 행정적인 일, 인자 이런 거 모든 게 인자 이장으로 통하고, 어, 내가 지금 맡고 있는 기 이장도 있지만, 우리 지금 이주 업무에 관련해가지고 또 내가 또 책임자다 보니까 이주 관련, 그다음 마을 행정 관련, 어, 마을에 향후 떠났을 때 이런 거 인자 미래에 대한 거 설계, 우리가 남았을 때에 나머지 이런 부분을 어떻게 활용방안이라던지, 그라고 주민들이 갔을 때 앞으로 뭐 어떤 수익을 사업해야 뭐 먹고살 수 있는지, 인자 그런 부분. 그런 부분을 다방면적으로 연구를 하니까 인자 머리가 마이 복잡죠. 복잡고,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기 인자 이주민들이 지금 지가가 너무 높게 나와뿌스니까 인자 그런 부분은, 우리가 생각했던 거보다 한 세(3)배 정도 이상 높게 나와 뿌니까, 한 칠(7), 팔(8) 년 사이에. 그래 그런 부분이 최고 크죠. 그래그래 그래지고 인자 뭐 지가 상승 부분에 대해 가지고 자꾸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 뭐 한수원에서는 뭐, 한수원이고 군이고 간에 서로 명분 싸움이 하다 보니까. 아, 조금 힘듭니다. 그 최고의 피해자들은 우리 그 원주민들이 토착민들이거든요. 토착민들은 알다시피 뭐 나름대로 옛날에 과거에부터 뭐 기존적으로 과수원 하시는 분이나 이런 분들은 그래도 마 수십억씩 받아가 괜찮은데, 우리 여 뭐 해변가에 사시는 분들은 뭐 한 이십(20)평(㎡), 삼십(30)평(㎡) 따까리 받아가 뭐. 내가 이거 조사를 해보니까 이억(200,000,000) 이하 받은 사람들이 한 칠십(70)프로(%) 정도 되는데. 그런데 그기 거의 다 원주민들이라. 그런 사람들 참, 하… 나도, 나도 참 마음이 마이 아픕니다. 아, 어떻게 하면 그런 분들 걱정 없이 데리고 가야 되는가, 이야기를 해도 잘 안 되고, 또 방법을 제시해도 잘 안 되고. 음, 그런 부분이 아직까지 뭐 협의할 부분이 있어, 아직까지 남아 있거든요. 남아있으니까, 특히 인자 공기업은 그기 어려버요. 공기업은 자기들이 어느 정도 명분을 만들어야 되는데, 그 또 뭐 법적 테두리 이외에 또 벗어나면, 자기들은 또 선례를 만들기 싫어하거든. 음, 선례 하면 그다음에 또 이 선례를 받아가 또 다른 데서 또 해줄라 하니. 그런 부분들이 뭐, 앞으로 뭐 계속 뭐, 하기는 협의는 하기는 하는데, 이래 보면 뭐. 그래도 희망은 있습니더. 해결 될 그런 희망도 있고.
혹시 이장님 역할을 하시다가 지금 말씀을 들어보니까 이장님 역할만 하시는 게 아니고, 다양하게 지금 마을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계시는데, 하시면서 제일 보람 있었던 일이 무엇일까요?
제일 보람 있는 일은 제가 볼 때 주민들이 그런 노고를 좀 알아주면서 인자 그… 빈말이라도 ‘욕봅니다. 아이고, 열심히 합니다.’ 이런 말 할 때 좀, 좀 알아 주고, 아, 내가 최고 안타까운 것은 우리 부모님들도 다 돌아가셨는데. 어, 우리 원전이 들어와서, 일단 지금은 우리 원전지원금이라던지 이런 거 마이 받아서 우리가 필요하면 마을에 어떤 행사라던지 할 수 있고 뭐, 그런 것도 할 수 있고, 선물도 드릴 수도 있고, 맛있는 거도 먹을 수도 있는데, 어, 옛날 우리 부모 세대들은 조금 마이 피해자거든요. 그때 뭐 그린벨트 묶여져 있었고, 어떤 개발행위 이런 게 마이 제한 돼가 있을 때, 우리 부모들이 막 고생한 세대들이거든. 그런 세대들이 떠나기 전에 거 우리 부모 세대들한테는 최소한 마이 베풀어 주고 해야 되는데, 인자 그기 조금 안타깝죠. 안 그래도 좀 마이 해줄라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주를 만약에 가게 되면, 우리 여기 신리마을이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다 하는, 우리 선생님 개인적인 생각을 한번 말씀 듣고 싶습니다.
중요한 거는 우리 마을이 조금, 옛날에 우리 어릴 때는 거도 우리 서생면에서는 부촌이었거든요. 어릴 때 부촌이었는데, 가모 갈수록 마을이 다른 마을에 비해 가지고 엄청시리 거 발전을 모(못)하고, 다른 마을에 비해 가지고 가난한 마을이 돼버렸어. 그거는 뭐, 이때까지 뭐 어느 누구 탓하는 것도 아이고, 지도자들도 뭐 나름대로 노력했겠지만, 우리가, 우리가 봤을 때는 음… 위치나 지리적이나 이런 걸 보면 참 좋은데, 그를 개발을 못 했는 거 같애. 그래 우리도 인자 이주를 가면 최고 우선이 인자 노인들이, 노인들이 돈 걱정 없이 아픈데 병원가가 병원비 걱정 안 하고, 그래 가지고 뭐 한(1) 달에 일정한 금액이라도 수익사업 해가지고 드릴 수 있고, 나머지 조금 이렇게 한 오륙십(5~60) 대나 칠십(70) 대 조금 못 된 분들도, 어느 정도 고정적인 수입이 창출될 수 있도록, 그렇게 만드는 게 최고 안 좋겠나 싶습니다. 뭐 집 짓고 뭐 이런 거야 뭐 가정 형편대로 짓는 거지만, 어, 그런 고정적인 이런 틀을 만들어 놓으면 앞으로 계속 마을에 발전이 안 있겠나 싶습니다.
-김경완 구술자 1차 1부 구술 내용 (정리 - 경상일보 디지털 뉴스부 배정환 부장.)
※ 본 기사와 관련된 영상은 한국문화원연합회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