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법정에 선 대선 후보

2024-04-30     경상일보

다른 나라에서 치러지지만,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선거 소식이 있다. 오는 11월5일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 이야기이다. 양당 체제가 견고하게 구축된 미국에서 각 당 후보는 무수한 검증을 거쳐 선발되고, 최종적으로는 시민 유권자들과 대통령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의 선택이 조합된 미국 특유의 대의제 시스템에 따라 당선자가 결정된다.

그런데, 이 선거에서 전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자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무수한 소송 사건들의 피고, 피고인이 되어 관련 절차가 함께 진행 중인 것이 그것이다. 현재 트럼프는 주 법원 및 연방 법원에서 총 91건의 민·형사 사건들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며, 뉴욕주 민사 사건에서는 이미 패소 판결이 한 차례 선고 되었다. 선거를 통한 정치적 판단은 온전히 미국 유권자들의 몫이지만, 그를 둘러싼 주요 소송 사건의 내용을 살펴보고 그 법적 결말을 가늠해 보는 일은 선거 결과가 가져올 영향에 대비하는 다른 나라에서도 의미 있는 일로 생각되어 지면을 빌어 소개한다.

첫 번째 사건은 2022년 가을, 트럼프의 아들들과 그의 보좌관이 탈세 목적에서 재산을 허위 신고했음을 이유로 뉴욕주 검찰총장 레티샤 제임스가 제기한 민사소송이다. 이 사건은 3억5000만 달러와 지연이자를 배상하고, 향후 3년간 자신의 기업을 경영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판결이 올해 2월16일 선고되었다. 트럼프는 공탁금으로 1억7000만 달러를 납부하고 항소했다.

두 번째 사건은 정부 기관이 아닌 개인이 제기한 소송이다. 작가 진 캐럴이 1990년대 트럼프가 자신을 백화점 탈의실에서 성폭행한 사실을 부인하며 자신을 비난한 데 대해 폭행 및 명예훼손을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23년 5월과 올해 1월 원고 청구가 인용됨에 따라 총 88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선고 되었다.

세 번째 사건은 트럼프가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외부에 누설하지 않는 대가로 지불할 돈(hush money)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기업 회계장부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뉴욕 맨해튼 지청 앨빈 브랙 검사가 기소한 형사 소송이다. 본건은 트럼프라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첫 번째 형사 사건으로, 이달 15일 첫 공판이 열렸다.

네 번째 사건은 트럼프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면서 국가 기밀문서들을 관저에서 무단 반출한 것에 대해 미 국무부 특별검사 잭 스미스가 37건의 연방 범죄 혐의로 2023년 6월 기소함으로써 개시되었다. 주요 혐의 내용에는 국가기밀 누설, 사법 방해, 문서 인멸, 허위 진술 등으로, 5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기밀문서들이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마라라고’ 저택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마라라고 문서(Mar-a-Lago documents)라고 불린다.

다섯 번째 사건은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직적인 부정선거가 획책 되었다는 혐의로 조지아주 파니 윌리스 검사가 트럼프와 18명의 관계자를 2023년 8월 기소한 조직범죄 혐의 소송이다. 사안의 특성 면에서 현재 진행 중인 대선에 미칠 영향이 큰 사건이나, 실제 유죄 판결이 선고될지와 관련해 전문가들의 예상은 엇갈리고 있다.

여섯 번째 사건은 다섯 번째 사건과 동일하게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한 이후 선거 결과에 불복하면서 저지른 네 건의 연방 범죄와 관련해 네 번째 사건을 담당 중인 스미스 특별검사가 제기한 사건이다. 본 사건은 2023년 8월 대배심에서 기소가 결정되었고, 전직 대통령의 불소추특권(presidential immunity) 적용 대상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지난 25일 연방대법원 심리가 진행되었다.

이 밖에도 일부 주 정부들이 2020년 선거 불복과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 관련 기소를 이유로 트럼프가 2024년 대선 후보 자격이 없으며, 따라서 투표용지에서 삭제하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연방대법원이 해당 주 정부 결정의 효력을 부정하는 판결을 지난달 4일 내린 바 있다. 요약하기에도 벅찬 트럼프를 둘러싼 소송 사건들은 다가오는 대선 결과의 불확실성과 더불어 선거 결과가 어떠하든 미국 사회가 깊은 후유증을 피하기 어려울 것임을 짐작케 한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