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울산시내버스 노선은 바뀌어야 한다

2024-05-02     경상일보

정책 결정은 보통 정치적 판단과 결단으로 내려진다. 노태우 대통령때인 1992년 4월30일 고속전철건설추진위원회는 경부고속철도 노선을 최종확정해서 공고했지만, 1995년 무렵 경주통과 노선을 두고 온 나라가 들끓었다. 유적 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불국사 주지스님이 단식기도를 한다는 등의 반대 여론이 연일 신문지면을 채운 결과 지금처럼 경주 시내에서 먼 곳에 역이 만들어졌다. 그 무렵 울산에서도 울산역 유치 문제가 큰 이슈였다.

그런데 현재의 노선이 울산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 최적의 결정이었을까. 당초 울산은 인구나 공업생산력이 천양지차인 경주에도 밀렸다. 산업생산능력보다 관광을 더 높이 평가한 탓이다. 2010년 경부고속철도 울산역이 영업을 개시하면서 이는 잘못된 판단임이 드러났다. 울산의 승객 수는 1단계로 개통한 서울, 부산, 대구, 대전에 이어 5위였고, 2단계 개통 역 가운데는 단연 1위였다. 잘못된 정책으로 경주와 울산은 고속철도 도심 통과라는 기회를 함께 잃었다. 경주는 여론에 밀렸지만 울산은 1992년에 결정된 노선 그대로이다 보니 생긴 결과다. 처음부터 울산통과를 검토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당시 기초시였던 울산의 정치력이 부족했고, 정부의 정책 결정은 더 문제였다.

경부고속철도 사업에는 또 다른 의문도 있다. 독일, 일본 등이 차량스시템 사업에 도전했는데, 프랑스가 사업권을 따내는 데는 일본과의 과거사도 작용했다. 고속철도 차량시스템은 조선총독부청사를 폭파 철거하던 김영삼정권 때인 1994년 6월에 프랑스 TGV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최종 개통된 지금 수서역과 서울역 구간, 대전역 구간, 대구역 구간을 보면 개량은 했겠지만 기존 재래식 궤도를 쓰다 보니 속도를 크게 줄여서 운행하고 있다. 울산역이나 경주역처럼 전 구간을 전용선으로 달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업비 문제가 원인으로 짐작되지만, 어쩐지 개운하지 않다.

또 한가지는 터널이다. 경부고속철도 터널은 반지름이 대략 7m, 신칸센은 5m 정도다. 5열 좌석도 여유가 있는 신칸센인데, 어떻게 터널은 우리가 더 좁을까. 비결은 공기를 빨아드리는 차량구조와 총기의 소음기 원리가 적용된 터널말단부 구조에 있다고 한다. 원의 단면적 계산식으로 비교하면 우리 고속철도는 49π, 신칸센은 25π가 되어 2배 가량이다. 즉, 단순히 보아서 토목공사 물량도 2배가 되는 셈이다. 구조전공 모 대학교수는 “누가 파이를 줄이겠는가”라고 했다. 일류 전문가가 이런 기술 차이를 몰랐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치인이 전문가와 타협했거나 그도 아니면 잘못된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은 아닐까.

우리 울산도 잘못된 정치적 판단과 정책 결정으로 내몰린 일이 적지 않다. 1986년의 도시계획 변경이 그렇고, 1987년부터 추진된 동해남부선 시내 구간 철도이설사업과 삼산개발이 그렇다. 모두 관선 시장 시절의 일이다. 울산 해안가를 공장으로 뒤덮은 결정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사업가와 조선총독부가 결정했다. 그때 확보된 토지와 인프라가 군사정부의 울산공업센터 개발을 결정하게 했다. 백미는 개발제한구역 지정이다. 울산공업센터가 첫 삽을 뜬지 불과 10년 남짓 지난 시점에 벌써 개발이 불가능한 구역을 당시의 울산시 전체 면적보다 훨씬 넓게 결정했고, 이후 계획적 개발은 원천 봉쇄당했다. 모두 정치적 결정이고 판단이다. 광역시 승격 후에도 2002년에 추진되던 경전철 사업은 ‘표’ 때문에 무산되었고, 동해고속도로는 지금의 노선보다는 온산부터 해안선을 따라 동구를 지나가도록 결정하지 못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현재도, 미래도 모두 ‘정치’로 결정된다. 지금 울산을 돌아보아도 정치가 풀어주어야 할 과제는 넘친다. 예를 들면 수십 년간 근본적인 노선개편 없이 운행해온 울산시내버스가 그렇다. 도시가 크게 성장해온 만큼 노선도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했지만 오래 전의 틀을 유지하다 보니 ‘누더기’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번에 울산시는 일상화된 카드사용으로 얻은 승하차 데이터라는 객관적 근거를 가지고 노선개편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는 개인 차원의 불편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넘어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의식이 정책 결정을 뒷받침해 줄 때다. 합리적인 정책 결정이 ‘표’ 때문에 무산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삼건 울산역사연구소 소장·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