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울산의 첫 인상, 관문경관(關門景觀) 디자인 만들자
업무나 휴가를 위해 도시의 경계(境界)를 넘나드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다. 각 도시의 경계를 넘어설 때면 그 도시들만의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수 있다. 예를 들어,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경주IC에 들어서면 ‘천년고도 경주’를 상징하는 첨성대와 신라왕릉의 조형물이 설치된 진입로를 거쳐 웅장한 한옥지붕을 가진 톨게이트(Toll Gate)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크기의 ‘신라 치미(신라시대 건축물의 용마루 양 끝에 높게 부착하던 장식기와)’의 화려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잠시의 시간동안, 우리는 정교하게 디자인 된 공간경험을 통해 경주의 정체성을 상상할 수 있다.
이처럼 그 도시의 문화적, 사회적 특성을 도시 경계부의 연속적인 공간환경을 통해 나타내는 것을 ‘관문경관디자인’이라고 한다. 관문은 ‘국경이나 요새의 성문, 주요지점의 통로에서 지나는 사람과 물품을 조사하는 관(關)의 문(門) 혹은 국경이나 요새 따위를 드나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을 의미하며, 경관은 ‘산이나 들, 강, 바다와 같은 자연환경이나 지역의 풍경, 기후, 지형, 토양 따위의 자연적 요소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활동이 상호작용해 만들어 내는 지역의 통일된 특성’을 의미한다.
도시의 경계부는 점으로 이루어진 정적 요소가 아니라 선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동적 요소이다. 도시의 관문경관은 도시를 드나들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의 공간환경으로 도시의 경계에 접근하면서 경험하는 광역의 풍경에서 시작돼 제한적인 도시공간으로 수렴되는 전이공간(Transition Area)이라고 할 수 있다. 관문경관은 도시 방문자들에게 도시의 이미지를 사전에 인지시키고, 그 도시의 지역성과 사회문화적 특성 경험하게 하는 공감각적 수단이다. 이는 현대 도시의 경쟁력인 도시 이미지, 도시 브랜드 형성을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가장 오래된 관문 중 하나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사방가(四方街)의 문과 광장을 들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차마고도는 중국의 차(茶)와 티베트의 말(馬)을 물물교환하기 위해 다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를 말한다. 교역을 위해 멀고 험한 길을 걸어서 이곳을 방문하던 상인들에게 이곳 관문의 모습은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안식의 상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에도 유사한 공간이 존재한다. 그 당시 도시의 영역은 성벽으로 나뉘고 도시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길의 경계지점에는 관문이 설치되었다. 관문시설은 안전과 영역성이라는 도시의 물리적 기능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인지성과 상징성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현대에 와서 도시 발전과 확장에 따라 도시의 물리적 경계가 대부분 사라졌기 때문에 역설적이지만 도시의 관문경관디자인이 더욱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관문경관디자인은 단순한 조형물 혹은 장식의 의미가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과 비전(Vision)을 제시하는 상징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 거대한 증기선을 타고 유럽을 떠난 여행객들이 험난한 바다를 건너 미국 뉴욕항 입구에서 마주한 ‘자유의 여신상’의 모습처럼 관문경관은 그 도시의 가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전국의 지자체마다 각 도시의 특성을 나타내는 관문경관형성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결과들이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건 아니다. 지역의 역사, 문화적 특성이 배제된 채 조형성만 강조된 것, 관문공간의 물리적 특성을 무시한 채 규모만 강조된 것, 지역성의 사실적 표현으로 인한 어색함 등은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모든 도시가 자신들만의 도시역량을 동원해 차별화된 도시경쟁력을 확보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를 구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차별화된 도시경쟁력 중 하나인 도시의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특히 제조업 중심 산업도시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울산이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이며 매력있는 도시임을 표방하기 위해 관문경관디자인의 중요성과 조성의 시급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울산시 관문경관형성의 필요성과 디자인 방향에 대한 고견을 밝혔고, 울산시 공공디자인공모전을 통해서도 다양한 관문경관디자인안이 제시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을 표현할 수 있는 품격있고 창의적인 관문경관디자인이 실현되길 기대한다.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