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1번째 마지막 스승의 날을 맞이하며
곧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교사로서 맞는 ‘마흔한 번째 날’이면서 나에게 마지막이 될 올해의 ‘스승의 날’이다.
올해는 석가탄신일과 겹쳐서 그 전날쯤 88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제자의 꽃바구니가 도착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도 자신하는 것은 그 아이는 이제 아이라고 말하기도 어색한,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 그 제자는 다시 연락이 닿은 후부터 지금까지 10여년을 변함없이 꽃바구니를 보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꽃바구니로 스승의 날임을 실감하곤 했다.
그리고 또 몇몇의 아이들이 잊지 않고 안부를 묻고 선물도 보내 올 것이다. 안부를 묻는 제자도, 소식을 모르는 제자도 다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나는 어떤 선생님이었을까. 궁금해진다. 훌륭한 선생님은 아니었더라도 부디 상처로 기억되는 선생님은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 나는 또 나대로 우리 학교 모든 교직원들을 위한 스승의 날 선물을 준비할 것이다. 수석교사가 된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이 날을 좀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이래 학생도 교사도 조그마한 선물도 기겁을 하는지라 너무도 조용히 지나갔다. 예전엔 강당에서 학생회에서 일제히 꽃도 사서 달아주고 스승의 은혜 노래도 부르고, 감사편지도 읽는 스승의 날 기념식도 했었다.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얼마나 민망하던지 우리는 어린이날, 어버이날처럼 차라리 하루 쉬게 해 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조용해서 선생님들 자신도 모르고 그날을 맞기도 한다. 그런 민망함이 없어서 좋기도 하다. 내가 준비하는 선물은 정말 소박한 것이다. “카네이션 그림 위에 우리 모두는 소중한 아이들이 스승입니다”가 새겨진 스티커를 붙인 목캔디다. 그런데 이 선물은 우리 학교에 계시는 모든 분들을 위한 것이다.
교사들에게는 ‘큰 사랑을 담은 조그마한 선물’이 교무실 탁자 위에 있으니 가져가라고 하지만 급식실이나 청소미화원님, 주사님들께는 일일이 찾아가서 직접 드리고 온다. 내가 스승의 날이라 조그마한 선물 가져왔다고 하면 모두가 다 “우리는 스승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아닙니다. 우리 학교에 계시는 모든 분은 우리 소중한 아이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미치는 스승입니다. 국 한 그릇을 정성스레 퍼 주는 것도, 맛있는 밥을 지으시는 것도, 청소를 열심히 해 주는 것도 다 아이들에게는 영향을 미치니까요” 라고 말한다.
정말로 나는 그렇게 믿는다. 수업을 하는 사람만 스승은 아니다. 학교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배움을 주기 때문에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전에 있던 학교는 좀 큰 학교인데 코로나 상황이라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과 방역을 위해 오는 사람까지 모두를 위해 100개가 넘는 선물을 준비한 적도 있었다. 내가 그분들에게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스승이라고 말하면 학생들을 위한 손길이 좀더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을 담아 올해도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나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41년째 살고 있다. 물론 중간에 3년 휴직을 했지만 그때도 교사였으니 41년을 교사로 있는 게 틀린 말도 아니다. 그동안 세상의 변화 만큼이나 학교도 참 많이 변했다. 교육환경적인 요소도 많이 변했고, 학생들과 선생님과의 관계도 많이 변했다. 학생들에 의한 교권침해 사례가 심심찮게 언론에 오른다. 하지만 학교에 있어보면 그런 학생보다는 자기 일 잘하고 예의바른 학생이 훨씬 많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란 말이 있다. 예의 바르고 착실한 아이들은 더 잘할 수 있게, 방황하는 아이들은 제 갈 길을 찾을 수 있게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노력했으면 한다. 그리고 학교 바깥의 모든 사람들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땅의 소중한 아이들의 스승임을 깨닫고 우리 아이들이 바르게 커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마흔한 번째 마지막 스승의 날을 맞이하며 간절히 바라는 나의 소망이다.
송정열 울산제일중학교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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