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새로 만드는 즐거운 울산 학성공원
울산에는 ‘울산대공원’ ‘대왕암공원’을 비롯한 ‘태화강국가정원’까지 시민들과 외지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공원들이 여럿 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어엿한 공원임에도 불구하고 선 듯 앞에 나서지 못한 채, 나도 공원이라며 수줍게 명함을 내미는 ‘학성공원’도 있다. 한때, TV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이 남자가 내 남자다! 왜 말을 못해!”라고 했던 유행어가 생각난다. 다른 여자들에 비해 꿀릴 것이 없이 대단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인데, 왜 소극적이냐며 얼른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라고 용기를 불어 넣는 말이다. 이는 지금의 ‘학성공원’을 향해 필자가 딱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점차 잊혀 가고 있지만, 학성공원은 울산 최초로 조성된 유서 깊은 공원으로서 여러 공원들의 ‘맏이’ 격이다. 근대기에 ‘공원’의 개념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1928년 울산에서도 학성동의 ‘도산(島山)’에 공원을 만들고 ‘울산공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후 ‘학성공원’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공원의 형태나 기능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처럼 학성동에 공원이 만들어진 이유 중 하나는 태화강과 동천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여 두 강물이 수로(水路, 물길)처럼 산을 에워싸 마치 섬 같아 보인다하여 ‘도산(島山)’이라고 부를 만큼 경치가 뛰어났기 때문이며, 심지어 두 강물에 삼산(三山)까지 포함하여 이수삼산(二水三山)의 경승지로 표현하기까지 하였다.
또한 도산은 그저 경치만 좋은 곳이 아니었다. 1597년, 조선·명나라 연합군과 일본군이 치열하게 싸운 임진왜란 최대 규모의 동북아시아 국제전투, ‘도산성 전투’의 현장이기도 하다. 즉, 학성공원은 태화강과 어우러진 최고의 경승지이자 전적지로서의 상징성까지 부가된 대표적인 도심 역사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학성공원이 조성된 이후 울산시민들은 울산 유일의 공원을 십분 누리고 이용해 왔다. 매년 단오에는 그네를 설치하여 한복 입은 여인네들의 그네 뛰는 모습이 숲 사이로 보였고, 무심 날에는 초등학생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연필을 쥐고 글을 짓던 백일장의 터전이었다. 그리고 햇살 가득한 날에 공원을 산책하노라면 여고생들이 수채화를 그리는 사생대회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충혼탑을 세워 현충일과 여러 기념일에 선열들을 기리는 기념공원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월남전 파병에 나서는 아들을 울산역의 기차에 태워 보내기 전에 따뜻한 한 끼의 밥을 먹이던 기약 못할 이별의 장소이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학성공원은 울산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아왔다.
그러나 사람이 늙어가듯 도시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활력이 떨어지고, 학성공원 주변과 태화강 사이에는 집들이 들어서 물길도, 강물도 접하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그저 도심의 숲, 그 이상의 가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채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처럼 울산의 젖줄 태화강에 면한 숲, 조선시대 동북아시아 최대 전적지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징성과 명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학성공원의 슬럼프 속에서 최근 울산시가 발표한 ‘학성공원 일원 물길 복원 사업’은 도산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넘실대던 태화강과 동천의 뛰어난 경치를 재현하여 관광으로서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며, 임진왜란 당시 최대 활약을 펼친 울산 선조들에 대한 헌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모든 종류의 성곽을 보유한 ‘성곽 표본실(성곽 박물관)’의 울산에, 조선 최대 국제 전적지로서의 상징성을 가진 도산성 전투의 현장에 ‘국립성곽박물관’을 조성하고자 하는 계획은 시의적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현장의 이해를 바탕으로 뛰어난 통찰력과 번득이는 창의력이 만난 ‘신의 한 수’이며, 학성공원의 진정성을 이끌어 내는 응원의 메시지인 것이다. 새로 만든다는 것은 단순한 새것이 아닌 지나온 것을 면밀히 분석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짜임새 있게 계획하는 것이다. ‘새로 만드는 위대한 울산’의 비전 아래 학성공원의 가치를 진단하여 세운 계획은 학성공원의 미래를 밝게 비춰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머지않은 시기에 새로 만드는 즐거운 울산 학성공원 일원에서 배를 타고 둘러 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윤두환 울산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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