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늘어나는 교제폭력, 법 제정은 백년하청
지난 6일 서울 강남역 인근 고층건물 옥상에서 2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살해했다. 지난 4월 경남 거제에서는 남자친구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20대 여성이 숨졌다. 그 한 달 전엔 경기 화성에서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여자친구 어머니에게까지 흉기를 휘두른 남성이 구속됐다. 이처럼 연인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신체적·정서적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울산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울산지역 교제폭력(데이트폭력) 검거 인원은 매년 평균 338명 수준이다. 교제폭력 112신고도 매년 늘고 있다. 지난 2021년 울산 교제폭력 신고는 974건이었으나 지난 2022년은 1427건, 지난해에는 1783건이 접수됐다. 3년새 83% 가량 증가한 것이다. 최근 3년간 교제폭력 피해자 신변보호 요청도 평균 60여건 발생하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교제폭력 검거 건수가 2020년 8951명에서 지난해 1만3939명으로 3년새 55.7%나 늘었다. 폭행, 상해, 감금, 협박, 성폭력 등 범행 유형도 다양하고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이 최소 138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사흘에 한 명꼴이다.
그동안 교제폭력은 ‘연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공권력은 개인 간에 해결해야 될 일이라며 적극적인 개입을 주저했다. 그러는 사이 교제폭력은 건수가 급증하고 내용 또한 다양화했다. 심지어 살인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게 됐다.
문제는 교제폭력이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아 정확한 피해 규모를 헤아리기 어렵고, 피해자를 위한 법적 보호 장치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교제폭력은 진화하는데 대응 방안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제폭력은 스토킹이나 가족 폭력과는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 9월 연인의 외도를 의심한 남자 친구가 40대 여성을 살해해 유기한 사건 이후로 10년 가까이 교제폭력 관련 법안 10건을 제출했으나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교제폭력들은 대부분 교제폭력을 연인끼리의 사소한 일로 치부하다가 시기를 놓친 경우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에서는 교제폭력에 대한 경각심이 떨어져 제출된 법안이 자동 폐기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으니 피해자들은 하소연할 데가 없다. 국회가 하루 빨리 제기능을 되찾아 피해자 양산을 중단시켜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