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태화강 포경선에 올라 댓잎 차 한 잔을
5월1일, 함평 나비축제를 다녀왔다. 올해 26회이니 해마다 아이디어를 추가해 놀랍게 발전하고 있다. 나비축제는 4월26~5월6일까지 11일이었는데 그 후, 며칠을 쉬면서 다시 손을 보아 지속적으로 관광이 가능하게 열고 있다. 함평군은 관광객들에게 쌀, 김, 꿀, 돗자리 등 특산물을 판매하고 머물다 갈 공간을 갖추었다.
5월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태화강 국가정원 일원에서 ‘정원의 봄, 꽃으로 열다’라는 주제로 ‘2024 태화강 국가정원 봄꽃 축제’를 연다. 2만8000㎡(8470평)에 꽃양귀비, 작약, 수레국화, 안개초, 금영화 등 5종, 6000만 송이가 향을 뿜는다. 이어 시화, 장미꽃 축제가 기다린다. 조성된 지 2년차를 맞는 ‘피트 아우돌프’의 자연주의정원에 손잡고 갈 사람들은 좋겠다. 이 기운으로 ‘2028 울산국제정원박람회’를 유치하게 될 것이다. 공들인 울산시에 감사한다. 시는 태화강의 야간 볼거리인 ‘울산교 빛쇼’를 재정비해 ‘청춘의 다리 빛쇼’로 꾸몄다. ‘춤출랑교’라고도 하나본데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태화강변에 어울리는 십리 대숲은 명품이다.
함평의 서쪽엔 돌머리 해수욕장이 있고 그 앞 바다는 호수처럼 보인다. 위로는 영광, 아래와 건너, 서편으로는 무안 땅이다. 그러니 호수 같은 바다도 나누어 가진다. 길어야 25㎞인 해안선을 따라 둘레길은 걷기도 자전거 달리기도 좋게 되어있다. 그 호수 같은 바다를 보는 주포 언덕배기에 한옥마을을 지어 민박을 하고 근처의 어민들은 낙지를 잡는다. 해수찜을 하는 욕탕이 있어 피로를 푼다. 사시사철 사람들이 찾는다. 낙지는 두고두고 잡기 위해 산란장을 만들어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단다. 이 섬이 없으니 돌머리 해수욕장 앞 함평만에 인공으로 ‘나비섬’을 만들겠단다. 얼마나 놀라운 발상인가?
내가 자란 시골집에 대밭이 있었다. 대나무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대는 그대로도 쓰지만 가늘게 쪼개서 죽세공(竹細工)으로 바구니와 소쿠리를, 댓가지로는 빗자루를 만들었다. 댓잎은 소를 먹이는 쇠죽을 끓일 때 여물과 함께 넣어 끓였고 기름기가 있어서 불쏘시개로 잘 탔다. 늦게 나는 죽순은 자라도 대가 안 되기에 아예 밑동을 잘라 삶아서 나물로 해 먹는다. 여린 대나무가 단단해 질 때까지 둘러싸고 보호하는 죽순껍질은 저절로 벗겨 떨어지는데 이것을 주워 모아 모자나 방석을 만들었다. 갈퀴와 도리깨를 만들어 썼고 퉁소를 만들어 불기도 했다. 이런 대나무도 거름을 해야 더 굵고 크게 자랐다. 대나무로 만든 평상에 누워 삼베 홑이불을 덮고 연기 나는 모닥불로 모기를 쫓으며 반짝이는 별을 세다가 은하수에 풍덩 빠졌다. 여름밤은 청명하고도 아늑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자랐다.
대숲으로 유명한 담양의 ‘죽녹원’에 죽순이 하늘 높이 치솟는 걸 보았다. 죽순은 최고의 식품이고 대나무는 요긴한 재료다. 그런데 울창해야 할 대밭이 성글다. 근처의 가게에서는 대나무를 이용한 것으로 효자손이나 귀이개, 댓잎을 눈곱 반만큼이나 넣은 쫀득이를 팔고 있었다. 죽녹원 안의 한 가게에서 죽세공예품을 만들어 파는데 습기 차면 곰팡이가 스는 것을 방지하고자 옻칠을 입혀 보았단다. 천연 염료를 먹여 다양한 색으로 만들고 여러 번 입힌 옻칠 공예품은 평생 썩지 않는다고 한다. 고급스러웠다. 아무데서나 구할 수 없는 귀한 보배다. 하지만 죽세공을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플라스틱이 나오면서 절멸했는데 이걸 장인이 복원하면 안 될까?
명품 10리 대숲에 거름을 하고 있을까? 대나무로 실을 뽑으면 무엇이든 다 만든다. 천연 신소재다. 죽순이나 댓잎으로 먹거리를 개발하고 있을까? 바람에 나부끼는 댓잎소리를 들으며 대통밥에 고래 고기 한 점을 얹어 죽엽주를 맛볼 수 있다면 당장 울산으로 달려갈 것이다. ‘춤출랑교’ 말고 어느 곳에 강과 도시를 조망하는 높은 타워와 출렁다리라도 만들면 어떨까? 강에 쌓인 모래더미를 고래섬으로 꾸민다? 나비섬도 만든다는데…. 돈이 많이 드는 불꽃놀이 말고 돌고래 떼 드론 쇼는 어떨까? 환경에도 좋고 자주 열수도 있고. 태화강에 거북선 말고 커다란 포경선(捕鯨船)이 있다면 죽순나물에 대통밥을 먹고 거기에 올라가 댓잎차라도 한 잔 하련다. 울산하면 대숲과 고래 아니던가?
조기조 경남대 명예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