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2]]1부. 붉은 도끼 (2) - 글 : 김태환
김용삼은 자리 밑에서 검은 돌 하나를 들어올렸다. 묵직해 보이는 돌을 탁자 위에 쿵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 돌 표면에 붙어 있던 동그란 자석을 떼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자석을 돌 표면에 가져다 대니 쩍하고 달라붙었다.
“신기하죠? 이 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글쎄요. 철광석인가요?” “햐….”
김용삼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수석을 삼십 년을 했다는 사람이 철광석과 운석을 구분하지 못하느냐고 했다. 몇 해 전에 진주지방에 운석이 무더기로 쏟아져 많은 사람들이 횡재를 한 사실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당시 워낙 매스컴에서 떠들어 댔기 때문에 모른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정말 눈앞의 검은 돌이 운석인지는 확신이 가지 않았다. 정말 운석이라면 하늘에 있는 별을 따지는 않았어도 떨어진 별을 주운 셈이었다.
“일본인들이 개발했었다는 광산은 찾을 수 있나요?”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안 그래도 거길 찾아내려고 산을 헤매고 다녔는데 찾지 못했습니다.”
나는 농담으로 거길 찾아내거든 같이 광산개발을 하자고 했다. 김용삼은 흔쾌히 그러자고 대답은 했지만 절대로 자기가 발견한 노다지를 남에게 넘겨줄 표정이 아니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붉은 홍옥석 원석을 얼마에 팔아먹을까 애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한 시간을 떠들다 보니 더 이상 김용삼에게 얻어들을 정보가 없는 듯했다. 홍옥석이 귀하거나 탐이 나서가 아니라 다음에도 한 번은 만나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흥정 끝에 20만원을 주고 붉은 홍옥석을 샀다. “이거 한 덩어리면 반지나 목걸이를 수십 개는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수석이 아니라 붉은 보석이니까요.”
내 귀에는 돌멩이 하나를 20만원에 팔아먹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 말이었다. 돌이라면 올 한 해 동안 수도 없이 주워들였다. 개수로 따지면 수백 개는 족히 넘을 듯 싶다. 수석을 취미로 삼은 지는 30년이 다되어간다. 그러나 30년 동안 줄곧 수석탐석을 한 건 아니었다. 10년을 수석취미생활을 하다 20년은 쉬고 최근 들어 다시 탐석을 다녔다.
김용삼에게 20만원을 주고 구입한 홍옥석을 트렁크에 집어넣고 미호천으로 차를 몰았다. 지도검색을 해보니 미호천은 대곡댐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였다. 태화강의 발원지인 백운산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줄기가 지도상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대곡댐의 시작점이자 미호천의 끝 지점인 유촌 마을로 찾아갔다. 끝에서부터 시작할 생각이었다. 국도에서 경부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지나고 나니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개울가에 도착해 장화로 갈아 신는데 내 또래의 남자가 다가왔다.
“뭐 하시려고 합니까?” “아. 네. 이 마을에 사십니까?”
남자는 대답 대신 나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혹시 돌을 주우러 온 것이냐고 먼저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되물으니 올 여름 장마 때 이곳을 다녀간 사람이 수백 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돌을 주워가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내가 건넨 명함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아마도 난생처음 받아보는 명함일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출간한 책 표지 사진을 축소해서 만든 명함이었다. “수석인들이 많이 왔다는 걸 보니 이곳에서 나오는 붉은 돌도 잘 아시겠네요. 저는 돌을 주워 팔아먹으려는 사람은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광산개발을 해서 수탈해 갔다는데, 그 이야기를 조사해서 글로 쓸까하고 온 겁니다.” 나는 잠시 내가 소설가라는 사실에 으쓱했다. 명함을 보고 난 남자의 표정은 많이 부드러워졌다. 명함에 찍힌 장편소설은 방금 출간했다고 설명을 했다. 명함을 자세히 살펴보던 남자의 태도는 급하게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