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3]]1부, 붉은 도끼(3) - 글 : 김태환
“지금은 붉은 돌을 찾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려 작은 쪼가리 하나 찾기가 힘들 겁니다.”
나는 돌을 줍기보다는 이야기를 듣는 게 우선이었다. 남자에게 일제강점기 광산개발을 했던 사실을 물어보니 아무것도 알고 있는 게 없었다. 그 이야기를 확인하려면 상류 쪽인 백운산 자락 상동마을의 어르신들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명함에 찍힌 책을 한 권 얻을 수 있느냐고 했다. 나는 다음에 들릴 때 꼭 가져다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남자는 못미더운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그러나 나는 이야기의 끈을 잡기 위해 붉은 돌의 흔적을 꼭 찾아낼 생각이었다. 하루 만에 안 되면 몇날 며칠이라도 성공할 때까지 달라붙을 각오였다.
남자가 사라진 뒤 장화를 신고 개울로 내려섰다. 개울물에 장화를 담그는 순간 발밑에서 전류가 흐르는 듯 짜르르한 기운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다리를 타고 올라온 전류는 순식간에 온 몸을 휘감았다.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폐가로 방치된 생가에 돌아 온 느낌이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물속을 들여다보려던 생각을 접고 고개를 들어 멀리 개울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가까운 곳에는 버드나무 숲이 무성했다. 제법 먼 거리에 대곡댐을 가로지르는 삼정교가 눈에 들어왔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다리가 무지개처럼 느껴졌다. 삼정교는 어쩌다 한 번 씩 건너다니는 다리였다.
그런데도 멀리 아래쪽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아주 생소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가까이에 있는 버드나무 숲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얼굴에 바람은 느껴지지 않았다. 파도가 일 듯 숲이 요동쳤다. 바람이 느껴지지 않은 탓인지 버드나무 숲 속에 거대한 동물들이 이동하고 있는 듯 했다. 멀리 삼정교를 바라 본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무지개처럼 공중에 걸려 있던 다리가 롤러코스트의 궤도처럼 마구 엉켜져 있었다.
잠시 서 있다 눈을 뜨니 발밑에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작은 물살에 구름이 내려앉아 일렁이고 있었다. 그 구름 사이에 완두콩만한 크기의 붉은 점이 보였다.
“앗!”
나는 작은 비명을 질렀다. 바로 붉은 돌이었다. 손을 뻗어 돌을 집어 올렸다. 어른 주먹만한 크기였다. 붉은 색은 분명 홍옥석이었다. 반대 방향으로 뒤집으니 제법 넓은 붉은 무늬가 있었다. 물에 젖은 붉은 무늬는 방금 흘린 핏빛처럼 붉었다. 갑자기 허기가 심하게 느껴졌다. 점심을 걸렀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버드나무 숲이 심하게 일렁이며 딛고 있는 바닥이 아래로 푹 꺼졌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허기가 져서 헛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아까 심하게 흔들리던 버드나무 숲은 고요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전형적인 맑은 가을날이었다. 사람들이 개울 아래쪽에서 올라왔다.나와 같은 목적으로 떼를 지어 온 탐석꾼들 같았다. 이렇게 좁은 개울바닥에 떼로 몰려와 홍옥석을 찾아내면 남아있는 돌이 없을 것 같았다. 수석에 미친 사람들의 열정은 항상 도를 넘어서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점점 내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손에 든 주먹돌을 생각하며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먼저 와서 개울을 뒤진다 해도 홍옥석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빈손으로 개울바닥을 헤매다 올라오는 것이 분명했다. 가까이 다가오면 방금 탐석한 홍옥석을 자랑할 참이었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가 싶어 손등으로 눈을 비벼보기도 했다. 고개를 뒤로 돌려 상류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신기한 것은 방금 전에 보았던 마을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