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신중년의 인생 2·3모작 말처럼 쉽지 않다

2024-05-20     경상일보

평생직장의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는 요즘, 신중년(50~69세) 세대에게는 인생 2모작, 3모작을 위한 준비가 필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인생 2모작, 3모작을 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 같지는 않다.

신중년기에 퇴직을 하게 되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채 새로운 직업을 찾아 나서고 있으며, 더 이상 일하지 않고 은퇴를 하게 되는 경우에도 노년생활의 준비가 제대로 잘 되어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2022년 울산경제일자리진흥원의 ‘울산 중장년 일자리 정책 개선 연구’의 신중년 대상 설문조사는 이 같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조사대상 1000명 가운데 63.8%가 은퇴 후 재취업 및 창업 준비(계획)를 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신중년에게 인생 2모작, 3모작을 위한 준비는 사실 사치에 가까운 일이다. 영세한 중소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신중년 대부분은 인생 2모작, 3모작은커녕 현재의 직무와 관련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다.

법률 및 정부의 지원정책이 있음에도 다수의 신중년에게는 여전히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 고용보험 피보험자가 1000명 이상인 대기업에 근무한다면 그나마 의무적으로 제공되는 퇴직예정자를 위한 재취업지원서비스(outplacement)를 받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대기업에 근무하는 신중년보다 그렇지 않은 신중년이 훨씬 많다는 데 있다. 대기업이 많은 울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물론 1000명 미만의 기업 등 법률적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곳에서 근무하는 신중년이라고 하더라도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제공하는 여러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상황에서 중소기업 등에 재직 중인 사람이 이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일까? 이렇듯 재직 중인 신중년이 퇴직 후 인생 2모작, 3모작을 사전에 준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설사 기회가 있어 이 같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하더라도 퇴직 후 반드시 새로운 일자리를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기존에 해오던 일이 아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일이라면 재취업은 더욱 힘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신중년은 퇴직 후에도 그간 해왔던 일의 연장선상에서 일을 더 하고 싶어 한다. 이 점은 앞서 소개한 연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데, 재취업 시 선호하는 곳에 대해서 선호도를 살펴본 결과 은퇴직전과 유사한 직종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더구나 직업훈련 등 시간이 걸리는 직종에 대해서는 가장 낮은 선호도를 보인 점으로 미루어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따른 추가적 부담이 될 수 있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이런 성향을 감안한다면 신중년 세대에게는 가급적 기존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재취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렇게 된다면 추가되는 훈련 비용도 아낄 수 있다. 실제로 숙련근로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일부 제조업체가 정년 후에도 이들을 계속 고용하는 사례가 제법 있는 걸 보면 그럴 것도 같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기존에 해오던 일과 유사한 일자리로의 재취업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특별한 기술 없이 사무직으로 근무했던 신중년이라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흔히 노동시장의 미스매치가 청년에 국한된 문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신중년 또한 미스매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저출산과 기대수명의 연장 등으로 노동시장에서 신중년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는 신중년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 신중년을 그저 유휴 노동력으로만 보는 것은, 인생 2모작, 3모작을 준비하는 신중년에게 실망만을 안겨줄 뿐이다. 이제라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얽힌 실타래를 하나하나씩 풀어보자.

김철준 울산경제일자리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