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면주칼럼]오월 유감
오월의 영남알프스 봉우리를 타고 올라가는 연초록의 향연은 찬란하다 못해 웅장하다. 대공원의 백만 송이 장미는 4월에 내린 꽃비는 서막에 불과했다는 듯 오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태화강 국가정원에는 십리대밭의 대쪽 같은 선비를 유혹하려는 여인들의 교태가 각양각색의 양귀비로 만발했다.
산업도시이지만 산자수려(山紫水麗)한 자연풍광이 뛰어나서 그런지 의외로 대중 가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일제 강점기 백성들의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준 ‘타향살이’로 유명한 고복수, 80년대 ‘아파트’로 전국을 뒤흔든 미남 가수 윤수일,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바른생활 연예인 김태희, 미스터 트롯으로 유명세를 탄 김호중, 김희재, 황영웅, 얼마 전 울산시 홍보대사로 임명된 발라드 가수 테이 등을 꼽을 수 있다.
어버이날 무렵 큰딸이 김호중 콘서트를 예매해 보냈다. 마누라의 여든에 가까운 고등 선배 부부가 김호중의 팬클럽인 아리스 회원인데, 김호중의 고향인 울산 공연을 보고 싶어 서울서 온다는 전화를 받은 모양이다. 마누라는 즉시 딸에게 전화해 어버이날 선물로 콘서트 예매를 요구했고, 결국 선배 노부부와의 동반 콘서트 관람이 성사되었다. 나훈아나 장사익이면 몰라도 잘 모르는 김호중이라 내키지 않았지만, 여든 노부부의 열정이 궁금하기도 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팬클럽 아리스의 상징색인 보라색 머플러와 상의를 입고 나타난 노부부는 김호중의 테너 목소리에 매료돼 열성 팬이 되었다고 한다.
팬들의 환호와 보라색 물결 속의 우렁차고 기름진 목소리의 노래도 좋았지만, 고향인 울산에서 첫 콘서트를 가지는 진솔한 심경의 고백이 표 값을 했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유년시절부터 할머니 손에 자란 이야기.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주먹세계를 기웃거리며 늘 겉돌았던 이야기.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할머니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시면서 ‘하늘에서 지켜볼 테니 똑바로 살아라’는 유언을 했고 그때부터 정신을 차렸다는 고백. 전날 울산에서의 첫 공연을 마치고 사람들이 한적한 밤 12시경에 소주 한 병 사 들고 할머니 묘소를 찾아 펑펑 울었다는 고백 등에서 젊은 시절 굴곡진 인생을 이겨내고 금의환향한 33세 청년의 의지가 차츰 호감으로 다가왔다. 내심 그의 팬이 되어가던 중 갑자기 음주뺑소니와 운전자 바꾸어 치기의 혐의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도배를 하기 시작했다. 만나자 이별이라더니 날벼락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소속사에서 이런 상황에서도 창원 공연을 강행하겠다고 하자 팬들 사이에서는 찬반 의견이 분분했다. 반대하는 측은 주로 공인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반면, 찬성하는 측은 중범죄로 재판을 받거나 실형을 선고받은 정치인들도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활동하는데, 일개 가수가 교통사고 정도를 가지고 활동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가 많았다. 정치 집단의 부도덕성이 개인이나 다른 영역으로 전염되는 장면이다.
재판계류 중인 정치인의 활동은 중범죄자라도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법률상의 원칙에는 부합하지만, 도덕적이라 할 수는 없다. 공인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가치의 영역은 준법을 넘어서 봉사, 헌신, 정직 등 여러 가치가 요구된다. 특히 정치인에게는 토론과 이에 대한 승복, 소수 의견에 대한 관용의 정신 등 민주주의 철학의 도덕적 가치가 필연적 덕목이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차지한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는 다수결의 원리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한 최후의 법적 수단에 불과하며 토론과 승복이 민주적 의사결정의 도덕률임을 망각한 처사라 할 것이다. ‘라인홀드 리버’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인간 개개인은 얼마든지 이타심에 기반하여 도덕적으로 행동하지만, 집단을 이루게 되면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논리와 생리 때문에 비도덕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정치 영역의 비도덕적인 행태가 개인의 도덕률의 기준마저 저하시키고 있는 현상은 민주주의 또 하나의 위기이다. 아무튼 중학교 때 격투기 우승까지 하고 대통령 경호원을 꿈꾸었던 상남자 김호중은 법적인 처벌을 넘어서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는 도덕성을 보여주어 팬들의 용서를 받고 내년 오월 다시 울산 공연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신면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