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예 등 외교기념관’ 아닌 ‘이예 기념관’이 필요한 때
울산 중구청이 발주한 ‘이예 등 외교기념관’ 용역이 다음달 쯤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용역은 지난해 11월 착수됐으나 내용이 확대되면서 용역기간이 4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됐다. 중구청은 ‘이예 기념관’으로는 방문객을 유인하기 어렵다고 판단, 용역 명칭을 ‘이예 등 외교기념관’으로 이름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용역에는 박제상과 이겸수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용역의 명칭이 아무래도 달갑지 않다. 아무리 방문객 유치에 자신이 없더라도 ‘등’이라는 단어를 억지로 집어넣은 것은 너무 어색하다. 용역 명칭과 내용이 이예와 기타 인물들로 구성된다는 것은 기념관의 명칭이 ‘이예 등 외교기념관’로 확정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혹여라도 기념관 명칭이 ‘이예 등 외교기념관’로 확정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다. 실제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 등 기념관’이라는 기념관은 찾으려야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이 기념관은 정말로 ‘맥락없는’ 기념관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구청은 이예 기념관이 과연 방문객을 유인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예와 관련한 전시물과 기록 등은 도처에 깔려 있다. 예를 들어 조선 통신사만 하더라도 관련 자료가 수없이 많다. 조선시대 때 이예는 세종대왕 재위시 4번이나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조선시대 통틀어 24번 통신사가 파견된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회수다. 또 이예 어머니가 왜구들에게 잡혀가는 수모를 당할만큼 울산은 왜구의 노략질이 전국에서 가장 심했는데, 이를 사료 등으로 역사를 재구성하면 당시 울산의 사정을 스토라인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
특히 지난 9일 사단법인 충숙공이예선생기념사업회가 교토에서 제막식을 가진 이예 선생 동상은 우리나라 인물로는 처음으로 일본 땅에 세워진 것으로, 한일 양국 우호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예는 당시 임금의 명을 받아 무려 40여회에 걸쳐 일본에 파견됐으며 그 중 4차례나 막부 쇼군을 만났다. 이 모든 것들이 기념관에 적합한 좋은 소재들이다.
기념관에 방문객이 많아야 한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다. 그러나 한 기념관에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다가는 역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박제상 기념관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온 시설이다. 그런 점에서 이예 기념관은 ‘등’을 뺀 순수한 기념관으로 세워져야 하며, 최근 이예로가 개통되고 교토에 동상이 세워진 지금이야말로 기념관을 건립하기가 가장 좋은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