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8]]2부. 버드나무 숲 (1) - 글 : 김태환

2024-05-27     이형중

내가 유촌마을을 다시 찾은 것은 퇴원을 하고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당분간 소설쓰기도 중단하라는 아내의 충고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네 삶에 쉼이라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쉰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에도 삶은 끊어지지 않고 연속되는 것이다. 인생에서 빠르거나 느린 시간은 절대 존재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한 속도로 흘러간다. 산다는 것은 매 순간을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내 건강을 염려하는 아내의 마음은 헤아리고도 남았다. 아내는 참으로 사랑스런 사람이다. 다음 생에도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아내를 선택할 것이다. 전생이 있었다면 분명 지금의 아내와 함께 살다 온 것이 분명하지 싶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의 말을 따르느라 내 인생의 속도를 늦출 수는 없다.

유촌 마을을 다시 찾게 된 것은 김인후의 전화 때문이었다. 김인후는 유촌 마을 냇가에서 처음 만난 남자의 이름이었다. 그는 전화를 걸어 대뜸 책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날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그날 개울에서 쓰러지지만 않았더라면 벌써 그와의 약속을 지켰을 것이다. 장편 외에도 내 단편이 실려 있는 몇 권의 문학지를 함께 챙겼다.

그의 집은 유촌 마을의 첫 입구에 있었다. 유촌이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예전부터 버드나무가 많았던 마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고속철도 밑을 지나 바로 좌회전을 하니 그의 집이 나타났다. 그가 마당 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소설가 선생님 멀쩡하시군요.”

그가 내 얼굴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나서 내뱉은 말이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는 했지만 외양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처음 왔던 날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왔으니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셔서 커피나 한 잔 하시지요.”

나는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지붕 서까래는 어떤 상태인지 기둥과 대들보의 상태는 어떤지 살폈다.

“집이 좀 누추합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지은 집이니 벌써 60년이 넘었죠.”

“그래도 집이 좋은데요.”

지은 지 60년이 넘은 집이니 좁은 마루를 지나 바로 안방으로 들어가는 구조였다. 부엌은 안방에서 문을 내고 입식으로 바꾸어 생활하기에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김인후는 커피포트에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가져 온 책을 그에게 내밀었다.

“이렇게 작가님에게 직접 책을 받아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는 소설가가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감격스러워했다. 첫 장을 열어 겉표지 안 쪽에 있는 프로필을 유심히 읽어보았다. 그는 이렇게 유명한 소설가님이 자기 집을 방문해 주어서 영광이라고 했다. 쑥스럽지만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가 컵에 믹스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넣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가족관계를 물어볼까 하는데 그가 먼저 말을 했다. 이곳은 원래 자기가 태어난 집이고 가족은 진주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 혼자 살고 있다 최근에 돌아가시고 자기 혼자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이라 했다.

“작가님하고 나하고 만난 것이 대단한 인연인 것 같습니다. 그날 제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지요.”

김인후의 설명대로라면 그가 아니었으면 나는 미호천의 싸늘한 물속에 코를 박고 죽었을 것이다. 김인후는 나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 바로 명함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아무리 신호가 가도 받지 않자 바로 냇가로 달려왔던 것이다. 개울물 안에 쓰러져 있는 나를 발견하고 바로 구조에 들어갔다고 했다. 119에 신고부터 하고 심폐소생술을 실시해서 호흡을 찾아놓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