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9]]2부. 버드나무숲 (2) - 글 : 김태환

2024-05-28     이형중

“잠시 죽었다 깨어나셨는데 저승구경은 잘 했습니까?”

“저승이라고요?”

그때 마침 지진이 일어난 듯 우르르르 하고 집이 흔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

“놀라셨군요. KTX열차가 지나가는 소리입니다. 10분마다 한 번씩 지나가죠.”

나는 그 소리에 정신까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그 날 개울에서 쓰러진 것도 열차가 지나가는 순간이었던 것 같았다. 김인후는 고속열차의 소음 때문에 집을 팔 수가 없다고 했다. 약간의 보상을 받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이 받고 있는 피해는 이만 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촌마을 바로 아래 있던 삼정마을은 대곡댐에 수몰되어 사라졌는데 자신들의 마을도 그때 수몰지구로 들어갔어야 했다고 했다.

“참 세상이 불공평해요. 수몰되어 떠나간 삼정마을 사람들이 가끔씩 우리 마을에 찾아와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똑같아요. 옛날이 그립다는 것이죠. 그런 사람들에게 내가 그러죠. 우리 집을 사서 들어오라고요. 그런데 아무도 우리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김인후는 나에게 수몰지구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 수몰지구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대곡댐이 물을 담기 전에 문화재를 발굴하는 기간이 있었다. 나는 그 기간에 아무런 자격도 없이 발굴현장을 누비고 다녔었다. 백련정이 있던 계곡은 풍광이 뛰어났다. 돌밭도 넓게 펼쳐져 있었고 삼국시대에 화랑들이 와서 심신 수련을 하던 곳이었다. 개울 바닥의 넓적한 바위에는 주먹이 쑥 들어가는 수직으로 뚫린 구멍이 있었는데 깃대를 꽂아 놓던 구멍이었다.

내가 수몰 예정지구에서 취해 온 것은 육식공룡의 발톱이 찍힌 큼직한 돌 하나와 그런대로 보아줄 만한 평원석 한 점이 전부였다. 김인후는 내가 수몰 지구 이야기를 하자 반가운 고향친구를 만난 기분이라고 했다. 자신은 어릴 적부터 백련정 계곡에서 놀았다고 했다. 학교 소풍도 그곳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백련정이 봉계마을 들어가는 입구로 옮겨져 있다고 했다.

“지금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것도 세월이 지나면 모두 잊히고 말겠지요?”

“기억은 쉽게 사라지겠지만 기록은 오래가겠지요.”

김인후는 작가가 그런 사라질 이야기들을 써야할 의무가 있지 않느냐고 했다. 나는 굳이 수몰지구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오로지 붉은 홍옥석에 얽힌 이야기를 찾고 싶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김인후는 뒤 돌아서 장롱을 열었다. 장롱 안에는 무명 솜을 넣어 만든 오래된 이불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사용하던 것으로 짐작되었다. 이불을 넣어둔 아래쪽에 서랍이 두 개 있었다. 맨 아래쪽의 서랍을 열더니 두툼한 서류뭉치를 꺼내었다. 서류뭉치에서 묵은 곰팡이 냄새가 났다. 김인후는 빈 커피 잔을 옆으로 밀어놓고 서류뭉치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여기 소설이 있습니다. 그대로 옮겨 쓰시기만 하면 소설이 될 것입니다.”

김인후는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내 앞에서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다시 장롱 안의 서랍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서류뭉치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바로 미호천에서 나오는 홍옥석이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납작하면서 좀 길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붉은 돌도끼였다. 경주박물관이나 암각화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연녹색 돌도끼는 보아왔지만 진한 홍색의 돌도끼는 난생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홍옥석으로 만든 돌도끼가 아닙니까?”

“분명 돌도끼가 맞지요? 이게 사람도 죽인 돌도끼입니다.”

김인후는 내가 묻기도 전에 붉은 돌도끼와 서류뭉치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서류뭉치와 돌도끼는 그의 작은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물건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