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10]] 2부. 버드나무숲 (3) - 글 : 김태환

2024-05-29     이형중

돌도끼로 죽인 사람은 일제강점기 두서 주재소에 근무하던 일본인 순사였다고 했다. 자신이 나서서 작은 할아버지를 독립운동가로 등록하려고 서류뭉치를 들고 보훈처를 드나들었는데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다.

“작은 할아버지의 이야기로는 분명 이 돌도끼로 일본인 순사를 죽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독립운동을 한 것이 맞지 않습니까?”

김인후의 이야기는 서류가 전부 한자와 일본어로 쓰여 있는데 무식한 보훈처 직원들이 읽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대문자나 외계문자도 아닌 이웃나라 문자를 해독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그에게 말했다.

“작가님이 이걸 읽어보시고 소설로 써주시면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집안이어서가 아니라 박상진 의사 같은 훌륭한 독립운동가가 있었던 우리 울산의 자랑이 아니겠습니까?”

“작은 할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돌아가시기는요. 올해 104세이신데 아직도 살아계십니다. 두동 면사무소 앞에 있는 연화노인 요양원에 계시죠.”

나는 104세의 노인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장 노인을 만나보고 싶었다. 제 삼자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보다는 믿음이 갈 것 같았다. 일본인 순사를 돌도끼로 살해했다면 가벼운 사건은 아닌 것이다. 나는 김인후에게 당장 작은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자고 했다. 그런데 김인후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작은 할아버지가 말을 듣기는 해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찾아가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묵직한 서류뭉치를 전부 읽어 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김인후가 나에게 설명한 작은 할아버지의 행적은 소설감이 될 만한 이야기였다. 해방되기 전 해에 두서면 주재소에 근무하는 일본인 순사를 살해하고 일본으로 잠입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귀국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독립운동가 중에 일본순사를 직접 살해한 경우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 일본순사에게 괴롭힘을 당한 독립운동가들이 많았다. 사실로 밝혀진다면 독립운동사에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 같았다. 더구나 증거로 돌도끼까지 남아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흥미를 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본인들이 아까다마라고 부르는 홍옥석도 수탈해간 것이 맞습니다. 이 돌도끼가 바로 홍옥석으로 만든 물건이 아닙니까. 일본인들이 광산개발을 한 이야기를 알아내는 것 보다 더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류는 제가 가져가서 읽어보고 돌려드리면 되겠지요?”

“물론 그래야지요. 이 돌도끼도 가져가세요. 직접적인 증거물이니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지요.”

김인후에게서 받은 서류뭉치와 붉은 돌도끼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신이 났다. 성공한 사냥꾼의 귀가길이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서재로 들어갔다. 보따리를 풀어 서류뭉치를 헤쳐 보는데 아내가 커피 잔을 들고 서재로 들어왔다.

“무척 신나는 일이 있었나 봐요?”

35년을 함께 산 사람이니 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기분을 알아맞히었다. 신이 날 수밖에 없는 게 작품 하나를 거저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아내도 덩달아 기분이 좋게 마련이다. 그것이 부부인 것이다.

아내는 서류를 뒤적이는 내 옆에 바짝 다가와 붉은 돌도끼를 집어 들었다.

“어머. 이건 뭐죠?”

“보면 모르겠소?”

“돌도끼가 아녀요?”

“그렇지? 분명 돌도끼가 맞지? 그걸로 사람을 죽였다네요.”

“옛?”

아내의 몸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손에 들었던 도끼를 탁 소리가 나도록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얼어붙은 아내의 얼굴을 빙긋 웃으며 바라보았다.

“소설이라는 게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만 쓰는 게 아니잖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