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울산이 공공의료를 유지해 온 길

2024-05-30     경상일보

며칠전 시의원 몇분께서 울산병원이 위탁운영하고 있는 해바라기센터에 방문해 주셨다. 가끔 국회나 경찰, 혹은 검찰청에서 방문해주신 경우는 있었지만 시의원분들이 단체로 방문한 건 처음이라 관심에 감사했다. 방문객들이 있을 땐 필자도 동석해서 함께 센터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간담회를 종종 갖는데, 그럴 때마다 이미 운영한지 오래됐음에도 새삼스럽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해봤으면 한다.

설명이 먼저 필요한데, 해바라기센터는 간단히 말해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공적 기관이다. 간호사, 심리상담사, 치료사, 여성경찰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있고 24시간 당직체계로 피해자들 관련 수사, 의료지원, 심리치료까지 한꺼번에 이뤄질 수 있는 곳이 해바라기센터다. 시청, 경찰청, 여성가족부, 병원의 4자 협약으로 운영되며 정신과와 산부인과가 있는 종합병원급 이상의 병원에만 설치가 가능하다. 위탁운영이 병원으로 되어있지만 4자 협약이기에 애매한 경우들이 있다. 일하는 직원들의 급여는 공기관에서 지급되고, 병원이 협약에 들어감에 있어 가장 큰 부분은 공간제공일 것이다.

울산해바라기센터는 2011년 울산병원에서 전국 6번째로 개소했고, 현재 국내에는 40여개 센터가 있다. 대상 연령층은 매우 다양하다. 어린 피해자들의 경우 정신과 및 소아과 진료가 필요할 때도 있기에 그 모든 진료과들이 다 있는 울산병원이 적합하긴 하다. 울산 해바라기센터의 센터장은 현재 울산병원장이고 소장은 울산병원의 산부인과 과장이며 실무 대부분은 전임자인 부소장이 맡고 있다.

그런데 여긴 속사정이 좀 있다. 전국의 해바라기 센터들이 위치해 있는 곳들을 가만히 보면 대부분 대학병원 혹은 국립, 공공병원들이다. 하지만 울산은 대학병원이 딱 한 곳인데다 위치상 조금 치우쳐 있고 공공병원은 없기 때문에 종합병원 중 한곳인 울산병원이 그 역할을 맡은 것이다. 울산 해바라기센터는 원래 다른 병원에 작은 규모인 원스톱센터라는 이름으로 있다가 예산과 기능이 확장된 해바라기센터 사업이 시행되며 공간상 문제로 울산병원 8층에 위치하게 됐고 병원에선 무상임대를 해왔다. 현재는 병원 응급실 바로 옆에 있는데 작년 병상총량제 관련 상황으로 병동 증축을 해야했기에 지금의 장소로 이전을 한 것이다. 지금 위치한 곳 역시 무상임대를 해주고 있으며, 이사하며 들어가는 공사비용의 대부분도 병원이 부담했다. 사실, 울산병원은 공립병원이 아닌 사립병원이다. 사립병원은 지속가능성을 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고 혹 재정적 위기가 온다면 사립병원 자체의 노력 외에 공적인 무언가에 기대는게 불가능하다.

해바라기센터는 수익 사업과 무관한 공적인 역할을 하는 기관이지만 사립병원인 울산병원에 위치해 있고 그렇게 병원 수익과 무관하게 지금까지 14년간 운영이 되어왔다. 이런 부분들이 처음엔 마음에 걸렸지만,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 높지 않은 보수에도 상당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고 보직을 맡은 병원 의료진들도 마음가짐이 남다르기에 공간을 제공하는 정도라도 계산없이 돕자는 게 현재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가 아니면 아마 운영될 곳이 없을 가능성도 크니 우리라도 맡은 게 다행이라는 조금의 안도감도 느끼고 있다.

울산은 공공병원이 해야할 역할을 지역의 종합병원들이 나눠서 해오고 있다. 해바라기센터 이야기만 했지만, 진정이 힘든 장애인 분들의 치아건강을 담당하는 장애인 구강센터는 울산대학교병원에 있으며, 술에 너무 취한 주취자들을 후송하게 되는 주취자센터는 중앙병원에 있다. 타지역 대부분에선 공공병원들이 맡는 ‘책임의료기관’ 역시 울산은 울산대학교병원이 권역을, 서남권 지역을 동강병원이, 동북권 지역을 울산병원이 맡고 있다. 울산의료가 가진 숙제 중 하나인 공공병원의 부재를 울산에 있는 대학병원과 종합병원들은 이렇게 지금까지 풀어오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본다.

지역의 많은 병원과 의사들은 언급된 예들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이익과 상관없는 노력으로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다. 조금만 너그러운 시선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린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