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사윤수 ‘착차스’

2024-06-03     경상일보

줄줄이 꿰인 짐승의 회색 발톱들이
반질반질 매끄럽다
안데스 라마들은 죽을 때
제 발톱이 뽑혀져 악기가 된다는 것을 안다
마지막 눈을 감으며 안간힘으로
제 생의 기억을 밀어 넣은 발톱의 안쪽이 깊다
흔들면
오래전에 살점과 물렁뼈가 빠져나간 흔적이
착착착 흔들리는 소리
흙바람 속을 저물도록 걸었을
착착착 찰찰 기억의 껍질들이 부딪치는 소리
찰찰찰찰찰
소리가 소리를 자꾸 흔들게 만드는 소리
그것은 살아서 이룰 수 없는 구음이므로
돌아오지 못할 협곡을 맨발로 건너간
라마 떼가 물끄러미 이쪽을 돌아본다
파란 잉카의 하늘이 짐승의 속눈썹에 젖어있다
차르르 차르르르
야윈 뒤편에서 와락 안고 싶은 소리
맑은 물살처럼 뒤집어쓰고 싶은 소리
죽어서 나도 악기가 되고 싶은 소리



라마의 일생 담긴 착차스가 내는 기억의 소리

착차스는 나무 열매나 라마의 발톱으로 만든 고대 잉카의 악기이다. 탬버린처럼 흔들어 소리를 내는 몸울림악기인데, 착착착 소리가 나서 착차스라 부른다고 한다. 매우 감각적인 이름이다.

착차스 소리를 들어 본 적은 없지만, 실에 꿰어 흔들던 조개껍데기로 그 소리를 짐작해 본다. 조개껍데기는 서로 부딪히며 차르르 찰찰찰 자갈 해변에 물살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소리를 낸다.

라마의 발톱이라면, 바람이 나뭇잎을 휘젓고 빠져나가는 소리 같을까.

시인은 이 소리를 “기억의 껍질들이 부딪치는 소리”라고 하였다.

험준한 안데스 고산지대에 사는 라마는 짐을 운반하는 중요한 가축이었으니, 그 대부분의 기억은 “흙바람 속을 저물도록 걸었”던 보행의 이미지로 가득 찼으리라. 라마는 걷고 걷고 걷다가 끝내 죽음으로 걸어갔으리라. 죽을 때 제 발톱이 악기가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 텅 빈 곳에서라야 일어나는 소리를 위해 조금씩 제 몸을 비워 갔으리라.

소리가 기억을 끌고 온다. “물끄러미” 돌아보는 라마의 눈에 필생의 소리가 걸렸다. 찰찰찰.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