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위대한 도시 울산을 위한 디자인의 역할
불과 2년여 만에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온 생성형 AI의 등장은 인간이 애써 자신하던 고유한 영역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급격한 인공지능의 발전은 막연하게 느껴졌던 자율주행과 휴머노이드 로봇(Humanoid Robot)의 성능이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능력을 보유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지난 역사를 통해 인류가 경험한 전환기의 인식들보다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혁신적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단순한 노동을 대신하고 그로 인해 인간은 더욱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는 예측이 어쩌면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혁신적 기술들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발전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쇠퇴와 낙오라는 현실적 문제도 공존하기 때문에 세밀한 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창의성의 확산을 통한 창조적 도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2007년 아이폰을 통해 인류의 삶을 새로운 영역으로 이끈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우리가 인정하는 창의성의 대표적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을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Connection)’이라고 매우 단순하게 정의했다. 즉 창의성이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창의적 관점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디자인을 들 수 있다. 디자인이란 우리의 생각과 상상 속에 있는 것을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각적 결과물로 창조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지금 울산이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최근, ‘재미없는 도시 울산’이란 표현이 유행하고 있다. 그나마 재미없는 도시로 어깨를 나란히 하던 대전이 재미있는 도시로 변신해 울산만이 유일하게 남게 되었다는 우스개 소식도 들린다. 재미없는 도시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디자인이 없는 도시 울산(No-Design City Ulsan)’이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디자인은 국가와 지역의 성장과 혁신을 견인하는 주요한 수단이다. 세계를 이끄는 선진국인 영국은 1970년대에 이르러 혁신적 모범국가에서 이른바 ‘영국병 환자’ 국가로 전락했다. 급변하는 사회, 경제적 현상으로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고 영국의 국가 경쟁력 또한 급속하게 하락했다. 1979년 집권한 마거릿 대처 총리는 영국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디자인하지 않으면 몰락한다(Design or Decline)’는 캐치프레이즈를 강조하며 디자인산업을 육성하고 수준 높은 디자인문화를 확산해 영국 부활의 중요한 지렛대로 이용했다. 19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 총리는 ‘창조적인 영국(Creative Britain)’ ‘멋진 영국 (Cool Britain)’이라는 정책 슬로건을 내걸고 창조산업과 창조교육을 적극 지원했다.
2010년 ‘세계 디자인 수도’로 지정된 서울은 어느 도시보다 디자인에 진심인 도시다.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로서의 매력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대한 일관된 관심과 정책 실행을 통해 세계인이 좋아하는 재미있는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서울시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해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신설하고, 서울디자인재단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운영하며 디자인을 도시 경쟁력의 핵심 가치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시건축 창의·혁신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혁신적이고 감성적인 디자인’을 적용한 공공 및 민간 건축물에는 20% 용적률 상향을 허용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도시공간과 건축디자인의 파격적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적 명성의 건축가들이 서울시의 공공건축물, 공공공간, 민간건축물 디자인공모전에 참여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제안하고 있다. 이제 수년 후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매력과 재미가 넘치는 ‘디자인 도시 서울’을 경험할 수 있다.
울산의 매력과 활력이 예전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고, 울산의 위기와 불안한 미래를 예견하는 정보가 확산하고 있다. 울산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창의적이고 재미있는 도시로 전환하기 위한 ‘디자인 처방’이 필요하다. 또한 산업혁명의 발생지 영국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창조산업인 디자인에 집중한 것처럼, 산업수도 울산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디자인산업에 특별한 관심과 적극적인 지원방안이 필요하다.
이규백 울산대학교 교수 울산공간디자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