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심완구 전시장 4주기, 나뭇잎에서 느끼는 영원회귀

2024-06-07     경상일보

8일은 심완구 전 울산시장이 영면하신 지 4주년 기일, 고인이 심은 나뭇잎들이 신선한 산소를 뿜고 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80리 가듯’ 심 시장이 심은 나무의 푸르름이 짙어져 간다.

나무의 가장 고상한 쓰임새는 영원에 닿는 안테나다. 큰 나무는 하늘과 가까워 신의 기척을 먼저 느낀다. 고대로부터 큰 나무를 신성시했고, 그런 나무를 우주목 또는 세계수라 했다. 당산나무를 통해 마을신을 만나는 것도 같은 까닭이다. 그런 관점은 동서가 같아서 세계인이 애호한 영화 ‘아바타’의 중심에는 거대한 나무가 우뚝하다. 나무는 신화에만 머물지 않고, 영원으로 떠난 고인들과 생태적으로 이어 준다.

연결 요소는 숨결 속에 들락날락하는 산소 알갱이다. 우리가 마시는 산소 입자는 백년, 만 년 전 선조들이 들이켰던 그 산소이다. 산소는 지구 창생 이래 천년만년 순환한다. 들이킨 산소는 이산화탄소로 내뿜어지고, 그 이산화탄소는 나뭇잎의 기공으로 들어가 햇빛 에너지를 받아 합성한다. 탄소는 뿌리나 가지가 되고 산소는 공기 중에 방출돼 다시 우리 숨결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단군 할아버지가 마셨던 산소는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그 산소다. 지구 대기권 안의 산소는 새로 생기지도 않으며 없어지지도 않는다. 석가모니가 일찍 깨달았던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부증불감(不增不減)이다. 우리는 이런 인식을 통해 영원회귀를 경험한다.

심 시장의 나무사랑은 유별난 데 있었다. 아산로에 처음 심은 소나무는 가늘고 작았다. 그 모습을 본 심 시장은 이동철 조경특보에게 명해 굵고 큰 나무로 대체하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바꾼 나무가 제법 늠름한 모습으로 강변 풍경을 빛내주고 있다. 울산대공원과 문수체육공원 숲의 녹음이 일찌감치 짙어진 것은 애초부터 큰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심 시장은 산림보전에도 일념을 보였다. 심 시장은 일본 도요타시를 방문했을 때 도시의 한쪽은 자동차 공단으로 개발했으나 반대편 녹지는 자연 그대로 유지한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심 시장은 울산의 해안경관이 뭉개진 것은 이미 지난 일이지만 남아있는 산악경관은 보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역대 시장들도 나무를 심었다. 박맹우 시장은 태화강 둔치에 느티나무를 심었고, 송철호 시장은 백리대밭을 가꿨다. 나무는 더디게 자라고 치적이 금방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무 가꾸기에 애쓰는 것은, 눈앞의 인기정책에 치우치지 않고 세대를 이어갈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었다. 한때 서생 진하 해변의 무성한 노송들이 그 표본이었다. 크고 울창한 송림은 해풍과 거품을 막는 방풍방조림이 되었다. 수백 년 전 선조들이 후세대를 위해 가꾼 덕택이었다. 흔적만 남은 염포만과 방어진 토탄 늪 주변의 송림도 그런 경우다. 몇 해 전 동구청이 일산만 백사장에 해송을 애써 가꿔 옛 정취를 회복하려고 한 것도 그런 사례라 할 것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더라도 마음이 깊고 멀리 내다보는 목민관은 나무 가꾸기에 정성을 쏟았다. 최치원 선생이 물난리를 막기 위해 조성한 ‘함양 상림’을 비롯해 ‘담양 관방제림’이 그런 일념의 소산이다. 한학자 엄형섭씨가 최근 번역한 울산부사 심원열(沈遠悅 1792-1866)의 ‘태화강 둑의 버드나무는 누가 베었나?’란 글을 보면, 태화강 둑에 몇 백 그루의 버드나무가 있었음을 기록하고 그 나무가 존립했다면 멋진 풍치림이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그 버들은 사라지고 태화동 국가정원에 노거수 모습으로 몇 그루 남아 옛일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울산은 울창할 울(蔚)과 뫼 산(山)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나무가 울창한 고을이다. 숲과 조화로운 고을 가꾸기는 숙명적 과제다. 심 시장은 울산대공원 120만 평과 문수체육공원 30만 평을 불후의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어떤 강한 물질도 세월에 녹슬고 바스라지지만 연약한 숲은 대대로 이어진다. 심 시장은 공원 개장식 날 테이프를 끊고 기념식수를 했다. 테이프 커팅은 탯줄끊기의 기원이며 기념식수는 영원의 기약이었다. 심 시장은 심은 나무와 함께 우리와 호흡하며 영원을 산다.

김한태 향토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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