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숙 시인의 월요시담(詩談)]정용기 ‘낙화유수’
3월 춘분 무렵
산수유꽃 자우룩한 구례 산골짜기 들었다가
마음 굽이 노랗게 젖었다
4월 곡우 무렵
복사꽃 만발한 조치원 어름에서
분홍빛이 명치끝으로 꿈처럼 흘러들었다
5월 부처님오신날 즈음
갑사 가는 길 저수지가에서
찔레꽃이 마음의 문고리를 자꾸 잡아당겼다
봄 지나면서 누군가 몸속까지 몰래 숨어들어
아리게 내 속을 파먹는다
파먹힌 도랑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무더기로 알록달록 몰려들어
물낯을 자꾸 들여다보는 꽃잎들
두통과 발열 감당할 수 없구나
봄날은 흘러 흘러 까마득하구나
봄 지나 속절없이 떨어지는 꽃의 덧없음
낙화유수는 당나라 시인 이군옥이 쓴 시의 한 구절인 ‘낙화유수 원이금(落花流水 怨離襟)’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꽃은 떨어지고 물은 흘러가네. 떠나는 이 옷자락 원망스럽네.” 세월의 무상함, 이별의 안타까움 등이 묻어나는 말이다. 남인수의 <낙화유수>도 들어 보았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엮어 지은 맹세야” 봄꽃도 다 지고 봄물도 다 흘러간 초여름에 듣는 ‘낙화유수’는 남인수의 목소리처럼 어딘지 아릿하고 쓸쓸하다.
이 시에 등장하는 산수유꽃, 복사꽃, 찔레꽃은 모두 고향 들녘에 피던 꽃이다. “마음 굽이 노랗게 젖”고, “마음의 문고리를 자꾸 잡아당”긴다니, 꽃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섬세하고 아련하고 애틋하다. 아마 시인도 늦봄과 초여름 어름에서 분분히 지는 꽃들의 저 속절없음과 덧없음에 기대 이 시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봄꽃 지면 여름꽃 피고, 옛 물 흘러가면 새 물이 흘러오는 법. 시에 시를 더해 보자. 6월 망종 무렵/ 늦자란 금낭화가 주머니 열고 살그머니 풀어놓은/ 금사매, 수국, 치자꽃 향기를 나비 날개에 실어 보낸다. 그러고 보면 6월은 복사꽃 진 자리에 풋복숭아가 열리는 달이다.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