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6월, 생활 속에 깊이 파고든 전쟁
올해로 ‘현충일’이 제정된 지 69주년을 맞았다.
작년 6월에는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고 ‘보훈(報勳)’이 나라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이끌어가는 핵심 기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개칭·승격해 출범한 바 있다.
6·25 발발 74년이 지났고, 머나먼 타국에서 대한민국의 참전 용사들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크나큰 상처를 입은 베트남전도 종전 50년이 되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전운이 가득하다. 우크라이나와 중동에는 아직도 분쟁이 지속하는 가운데 남북 이산의 아픔이 아물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도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고 있어서 이른 시일 내에 영구한 평화가 구축될 날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신냉전의 먹구름이 드리운 한반도도 아프지만, 부지불식간에 전쟁과 관련된 용어도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파고 들어온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언젠가 하루 동안 일간지의 표제와 부제에 사용한 이런 단어들이 보인다. 선제공격, 정조준, 장기전, 속전속결, 지구전, 마지노선, 직격탄, 중무장, 속사포, 대반격, 집중포화, 공략(攻略), 전면전, 백병전, 확전, 각개전투, 전략적 접근, 대혈전, 전초전, 연전연승, 우승전략, 혈투, 융단폭격, 전력 점검, 열전, 대리전 등등…. 정치면은 물론 사회, 스포츠면에도 격한 용어가 많이 나타난다.
이렇듯 방송이나 언론지상에서도 일상을 전쟁으로 치부해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거친 단어들. 일기를 써도 ‘난중일기’를 써야 할 판이니 기뻐할지, 걱정해야 할지 어느덧 우리 모두 면역이 되어버린 듯하다.
6월이 오면, 우리가 이런 전투용어를 의식하지 못한 채 불감증에 빠진 것 같아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사색당파와 함께 정쟁, 당쟁으로 점철된 역사였고, 그 속에서 숱한 배신과 음모, 알력(軋轢)이 만연했다.
이제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고, 하더라도 자식 낳기를 꺼리는 시대, 서울에 집을 사려면 15년 이상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스란히 모아야 할 정도라고 하니 살기 위해 살아야 하는 이 상황 역시 생존을 위한 힘겨운 전쟁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 더하여 설전, 막말전, 여론전, 폭탄발언에다 심지어 총알택시, 총알 배송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게다가 사랑에도 전쟁이 개입한다. 인기 방송 드라마 ‘사랑과 전쟁’은 물론, 연례행사로 해마다 임금투쟁, 쟁취, 입시전쟁, 범죄와의 전쟁, 질병과의 전쟁 등 모든 곳에 전쟁이 들러붙었다.
일찍이 종교나 이념, 석유나 식량 등 자원을 무기로 일어난 전쟁이 이제는 총성 없는 무역전쟁, 정보전쟁 등으로 확산하고 달 탐사나 남극 과학기지 설치 등을 통한 우주 패권경쟁과 극지까지 전초기지로 삼아 재화를 선점하려는 무한전쟁으로 확전하게 되었다.
세상이 전쟁통처럼 너무 치열하고 건조해서겠지만 무분별한 전쟁용어 사용이 이제는 무감각해질 만큼 생활 속에 동화되어 버린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과연 이 세상에 ‘항구적인 평화’는 요원하고 대립관계인 ‘전쟁’과‘평화’는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안타까운 희망이지만, 가까운 역내(域內)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만연한 불신과 갈등이 조속히 종식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올해도 호국보훈의 달 6월이 왔다.
사전(辭典)에 ‘보훈’은 ‘국가의 존립과 주권 수호를 위해서 신체적, 정신적 희생을 당하거나 뚜렷한 공훈을 세운 사람 또는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국가가 나라를 위해 헌신한 국민을 예우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로 생각된다.
권영해 시인·전 울산문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