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기록과 전해야 하는 것

2020-03-19     경상일보

예부터 우리 민족은 기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또 실행해왔다. 근 500여 년간 왕의 사소한 대화부터 어느 마을에서 사람과 개가 벼락을 맞았다는 시시콜콜한 기록까지 하나하나 남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 아주 좋은 예시다. 어찌나 방대한지 당시 시대상은 기본이고 혜성의 지구 접근이나 별의 폭발까지 아주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어 서구의 천문학자들도 참조까지 할 정도니 학문적으로도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옆 나라를 상대할 때는 세종실록지리지 오십 페이지 셋째 줄을 언급하면 모두가 애국자도 될 수 있는 마법의 문장도 있으니 실생활에도 참으로 유용하기 그지없다.

‘밈’(MEME)이라는 살짝 오래된 조어가 있다. 모방자 혹은 문화유전자 등으로 번역하기도 하는 이 단어는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류의 사고와 문화도 마치 유전자처럼 복제되고 전파되는 것에 착안해 만들어낸 용어로 인류가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 자신의 생각과 지식들을 기록으로 남겨 전파하고 그로 인해 인류가 동물과 다르게 본능을 제치고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인류가 과거부터 쌓아온 지식들을 이용해 종이와 활자를 발명한 이후 소수의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던 기록이자 밈들이 대량으로 복제가 가능해져 접근이 쉬워지자 곧 인류의 지식수준이 올라가고 얼마안가 컴퓨터를 발명하게 되고 더 많은 복제가 가능해지자 순식간에 전 인류의 모든 행동을 초 단위로 모두 기록하고도 충분할 정도로 발전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를 보면 기록의 총량은 바로 인류 문명의 발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광속으로도 꼬박 하루 가까이 걸릴 정도로 멀어진 지구의 문명 일부가 기록되어 있는 골든 레코드를 싣고 우주로 나아간 보이저 1, 2호 탐사선 계획도 우리가 과거의 기록들을 이용하지 못했다면 실행할 수 없다.

당연하지만 기록만 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역사가인 에드워드 헬릿카가 말한 것처럼 기록과 현재 사이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이를 가장 잘 나타낸다.

너무나 급진적인 변화의 과정에서 미래를 예견한 소설가들이 있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정보가 박탈되어 진실이 감춰지고 폐쇄적으로 변할 것을 두려워했고,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너무 많은 정보가 범람해 진실이 묻히고 자극적이고 저속한 것만 넘치는 것을 두려워했다. 지금 한참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뉴스들이나 순간적인 주목만을 노린 정보들을 보면 헉슬리의 예언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답에 가깝게 느껴진다.

말 그대로 모든 정보를 기록할 수 있다 보니 거짓이나 불량한 기록도 범람하는 과도기적인 시대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괴롭다. 공자가 일찍이 말했던 습득도 하고 생각도 해야 되는 기록들이 전 방위에서 홍수처럼 쏟아지며 덤벼드는 피곤한 사회다. 하지만 수많은 불량 기록에도 이제는 예전처럼 쉽게 믿지 않고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되는 것 또한 기록에서 배우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자 결과다.

며칠 전 WHO의 팬데믹 선언과 함께 세계적인 재앙으로 번진 코로나19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처는 전 세계가 부러워 할 정도로 빛을 발하고 있다. 작게 보면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를 겪고 꼼꼼하게 기록하고 끊임없이 발전방법을 모색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력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크게 보면 조선왕조, 그보다 더 전부터 내려오는 조상의 기록들을 우리들이 접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며 나라가 나라답지 못할 때 수정을 요구하고 싸워온 결과물인 것이다.

프랑스가 대혁명이후 근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것처럼 우리도 촛불 혁명 이후 현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프랑스가 자유 박애 평등의 정신을 전 세계로 전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가치인 사람이 우선이며 쉽게 만족하지 않으며 활발한 민주주의의 상징인 촛불정신이라는 ‘밈’을 기록하고 우리의 후손에게만이 아니라 전 세계로 전해야만 한다. 이미영 울산시의회 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