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남성들이 월경한다면

2024-06-13     경상일보

언젠가 여성 정치인이 남성들도 월경을 겪어봐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직도 월경 휴가를 주지 않는 직장이 많다며 남성 우월주의를 지적하며 목소리 높인 것이다. 난 여성의 월경으로 인한 정서적 문제를 도와주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러기에 다른 남성들보다는 그 고충에 공감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 말을 듣고 내가 월경을 수십년 매달 겪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하게 되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소름이 끼쳤다. 공감과 자신의 문제가 되는 것이 같은 것이 아님을 알지만 이렇게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놀라게 될 줄 몰랐다. ‘아기집’을 가진 여성의 숙명이니 받아들여야지, 하는 남성 이기주의적인 생각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미국의 여성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남자가 월경한다면’이란 글에서 월경에 대한 성 차별적 인식을 비판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남성이 월경하고 여성이 하지 않게 된다면, 월경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다소 길더라도 인용해보겠다.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는지 자랑하고 초경을 한 소년들은 이제 진짜 남자가 되었다고 좋아할 것이다. 초경을 기념하여 축하 행사와 파티가 벌어질 것이다. 국가적 차원의 남성의 호들갑이 벌어질 것이다. 지체 높은 정치가들의 생리통으로 인한 손실을 막기 위하여 의회는 ‘국립월경불순연구회’에 연구비를 지원할 것이다. 종교 근본주의자들은 월경은 남자들만이 나라에 봉사하고 신을 섬길 수 있는 증거라고 말할 것이다.”

뼈 있는 풍자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가슴이 이젠 좀 찔린다.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남성이 월경한다면 이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 한국에서 아직 여성은 월경을 은밀하고 부끄러운 것으로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다. 월경 페스티발이 1999년에 시작되어 24주년이 되었다. ‘어떤 피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라며, 월경을 경시하는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이를 터놓고 이야기하고 성 차별적 인식을 바꾸려는 여성운동이다. 월경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자는 것과 몸에 해로운 ‘일회용 생리대’ 추방 및 ‘대안 생리대’ 만들기 운동도 벌여 왔다. 우리 가족의 반, 사회의 반이 겪는 사회적 현상을 개선하려는 여성의 이러한 운동을 지지한다.

이 축제에서는 생리를 월경으로, 자궁을 포궁으로, 처녀막을 질 근육으로, 폐경을 완경으로 고쳐 제대로 사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여 왔다. 이러한 퀴즈도 냈다. ‘OOO는 월경 중 통증을 줄여주고 반영구적 사용이 가능하다. 또 패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사용법을 익히면 편리하므로 삶의 질이 달라진다. 성 경험이 없는 사람도 사용할 수 있다.’ 답을 아시겠는가? 답은 ‘생리컵’이란 월경 도구이다. 여러 매체에서 불우한 환경에 처한 어린 소녀들이 생리대가 없어 몸과 마음이 고통을 받으니 기부를 부탁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비용과 편의성에서 획기적인 이 생리컵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가슴이 내려앉았다가, 찔리다가, 여성의 힘찬 운동에 마음이 짠하다가, 소녀들의 고충이 줄어들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

월경은 포궁의 내막이 임신이 되지 않으면 뇌의 호르몬이 분비되어 벗겨지며 난자와 함께 배출되는 건강한 생리 과정이다.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으나 저 내막은 우리가 태아 시절 머물던 아기집의 터전이다. 언제 될지 모르는 건강한 임신을 위해, 인류의 보존을 위해 여성은 피를 흘리므로 월경은 자랑스러운 것이 맞다. 그러니, 아기를 낳는 너희들의 숙명이니 알아서 하라거나 터부시 하는 직장 남성이 있다면 이는 학대가 될 것이고 인류에게 죄를 짓는 무식한 행동인 것 같다. 남성은 자신이 월경한다는 이심전심의 심정으로 여성의 월경을 응원해야 할 것이다. 여성주의, 남성주의 할 것 없이 여성의 자궁과 월경은 인류 생존의 모태가 되는 건강한 피 흘림이다. 그 고충을 돕고 줄이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더욱 편안하게 수용하는 사회와 직장의 분위기가 될 것이다. 우린 문화 선진국이다.

한치호 마인드닥터의원 원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