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붉은 도끼[23]]4부. 아름다운 호수 (1) - 글 : 김태환

2024-06-18     이형중

나는 읽던 서류를 덮어놓고 붉은 돌도끼를 집어 들었다. 아직까지 붉은 돌도끼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사랑에 눈이 멀어 조국과 가족을 버리고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남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향 까마귀만 보아도 반갑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고향에서 건너온 돌이야 말해 무얼 하랴 싶었다.

붉은 돌도끼를 손바닥으로 슬슬 문질러 보았다. 사람을 죽였다는 물건이지만 흉측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언젠가는 내가 움켜쥐었었다는 기시감이 들며 애착이 갔다. 오른손으로 도끼를 들어 왼손바닥에 내리찍는 시늉을 해보았다. 책상 앞에 놓아둔 사람머리형상의 붉은 돌이 이야기를 걸어오는 듯했다.

돌도끼를 내려놓고 김용삼에게 구입한 깨진 홍옥석을 페이퍼에 갈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면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운 돌칼을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로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한 시간 정도를 갈다가 목이 말라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시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오영수문학관의 관장이었다. 자신이 소설을 쓰지는 않지만 지역의 소설가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소설가 오영수를 알리기 위해서는 지역의 소설가들이 큰 역할을 해주어야한다고 했다.

관장은 내일 오영수문학관 문학기행이 있는데 참석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문학기행의 내용을 듣고 난 뒤 단번에 승낙을 했다. 바로 대곡댐을 돌아보는 행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수자원공사의 협찬으로 대곡댐을 돌아보는 행사라고 했다.

안그래도 수자원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배를 얻어 타고 대곡댐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갈던 홍옥석을 챙겨 넣고 돌도끼를 집어 들었다. 세상 모든 일이 난데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얽히고설킨 인연에 따라 일어나는 것 같았다. 붉은 돌도끼를 잡은 느낌이 왜 이렇게 자연스러운지 알 수 없었다.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유촌 마을의 김인후였다. 김인후는 작은 할아버지의 일기를 얼마나 읽었는가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라가나가 너무 많아 속도가 더디다는 걸 알려주었다. 이제까지 읽은 내용으로는 김재성씨를 독립운동가로 등록하기는 무리인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일기의 한 부분이 없어진 것 같다고 했다.

일본순사인 마츠오의 사망사건이 빠져 있었다. 나중에 그 부분이 나타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김인후는 전화로 독촉하는 듯한 기분을 준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되어서인지 천천히 읽어보아도 된다고 변명처럼 말했다. 그러면서 시간이 되면 유촌 마을에 잠시 놀러 오라고 했다. 그 말끝에 당시에 홍옥석 광산에서 일을 했다는 노인을 찾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