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국립산업기술박물관은 ‘뜨거운 감자’인가

2024-06-19     경상일보

지난 2022년 4월2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시도별 공약과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5월15일에는 인수위원회 산하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가 울산을 찾아 울산 7대 공약과 15대 정책과제를 보고했다. 울산시민의 관심을 끈 사안 하나는 국립산업기술박물관(이하 산박)이었다. 해묵고 실패를 거듭한 문제라 의심도 있었으나 대체로 산박 설립이 ‘최우선적으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부나 시의 산박 관련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소문처럼 산박이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일까? 20년여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을 때 “광역시 울산의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라는 시민들의 한숨 소리를 또 듣게 될까 걱정이다. 더 늦기 전에 그동안의 실패를 돌아보고 어떤 방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싶다.

산박 설립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00년 초다. 당시 용산미군기지 자리에 공업역사박물관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일자, ‘울산유치 범시민운동본부’는 30만 시민의 서명을 받아 울산유치를 받아냈다. 2012년 박근혜와 문재인이 산박 설립을 대선공약으로 수용한 것도 시민의 열망 때문이었다.

2014년 울산시는 ‘국립산업기술박물관 울산설립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추진지원위원회’를 발족시켰으며 산업기술진흥원의 타당성 조사를 거쳐 울산박물관 인근으로 입지를 정했다. 2014년 11월 기재부는 한국개발원에 예비타당성조사를 의뢰했고, 울산시도 두 차례나 사업계획을 수정하며 대응했다. 그러나 2017년 8월 ‘경제성’의 낮은 점수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 예산 3억원이 확보되자 2017년 12월 ‘재추진 시민운동본부’가 출범하면서 활동이 재개되었다. 2019년 6월 산업기술진흥원은 ‘체험 프로그램’을 포함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설립 목적을 ‘산업기술의 비전과 중요성을 후대에 전수’하는 것으로 한정했다. 9월 울산시는 유물 전시보다 첨단기술을 이용한 콘텐츠와 체험공간을 확대한 ‘산업기술복합문화공간’으로 수정해 다시 신청했다. 그러나 2020년 1월 재정사업평가위원회는 ‘중복성’과 ‘시급성’ ‘운영계획 미비’ 등을 이유로 평가대상에서 제외해버렸다. 이후 울산시는 과기부의 ‘전문과학관’에 응모했으나 그마저도 7월31일 탈락하고 말았다.

산박 설립이 좌초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돌이켜 보면 정부도 시도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이나 그때나 막대한 예산과 정책 우선순위를 고려할 때 산박이 매력적인 사업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능적 접근 때문에 산박의 목적과 내용구성이 울산의 미래 발전 전략에 맞추어 기획되지 못했다. 그 점이 발목을 잡았다. 실패의 기억으로부터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점이 산박의 개념이라는 말이다. 시기, 장소, 규모, 내용구성, 운영, 예산 등은 산박 개념에 따라 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산박이어야 하는가? 한국형 산업기술관이어야 한다. 산업기술발전사의 정리와 유물 전시라는 전통적 박물관 개념과 최신의 과학산업관 개념을 창조적으로 접목한다는 의미다. 최근 세계적 산업기술박물관은 과학과 산업기술을 문화적으로 해석하고 시민의 창조적 정신을 일깨우며 기술혁신의 영감을 불어넣는 체험적 교육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산박이 과학, 기술, 산업과 인문예술이 소통하는 융복합 콘텐츠를 창출하는 거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산박은 또한 국내외를 겨냥한 관광, 투자유치, 그리고 혁신적 기술, 산업, 경제, 문화 발전의 플랫폼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보기 드문 경우며, 울산은 그 견인차이자 상징이다. 산업사의 경험과 역사문화 및 자연자원을 미래 산업과 연계한다면, 산박과 울산은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학습, 관광, 일자리 창출의 장소(hot spot)가 될 것이다.

울산의 당면 문제, 특히 인구감소와 청년 유출은 정서적 구호나 방편적 처방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산박은 울산이 구조적 약점을 극복하고 글로벌 도시로 거듭나게 할 동력이자 중심이 될 것이다.

김정배 전 울산문화재단 대표